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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박쥐들이 하늘에서 파드닥 파드닥 오르내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가벼운 몸짓. 박쥐의 세계는 반사와 굴절의 세계, 표면과 고체와 끝없는 대화를 나누는 세계였다. 그것은 내가 견딜 수 없는 삶이였다. 박쥐들은 절대로 '여기'를 모른다. '저기'로부터의 메아리를 알 뿐.

 여러 면에서 나는 아직 어린아이였다. 그 점은 누구보다도 나 자신이 먼저 인정할 수 있다. 나는 여전히 밤에 가끔 오줌을 써며, 오트밀 죽을 이상하게 겁냈다. 그러나 도해를 그릴 때면 어린아이가 가질 수 있는 불확실한 생각을 지울 수 있었다. '여기'와 '저기' 사이의 거리를 재는 일이란 그 사이에 놓인 미지의 것을 없애는 것이다. 나는 실증 자료가 부족한 어린아이였기에 '여기'와 '저기' 사이에 미지의 무엇이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무서웠다. 다른 많은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저기'에 가본 적이 없었다. '여기'에 있은 적도 거의 없었다.

 제도사가 가장 우선으로 지켜야 할 규칙이 있다. 관찰할 수 없다면, 종이에 기록하지도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옛 선구자들은 바로 다음 산 넘어에 펼쳐진 땅을 상상해 잘못된 지형을 그렸다. 규칙을 마구 위반한 것이다.루이스와 클라크, 조지 워싱턴까지 그랬는데, 아마도 그 사람들은 불확실성이 아주 많은 시대에 태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지도의 여백에 욕망과 두려움을 그리고 싶은 유혹은 얼마나 강렬한가. '용이 사는 곳'. 엣날 제도사들은 선이 닿는 곳 바로 너머의 빈 심연에 그렇게 적었다.

 그렇지만 엠마의 삶에는 근본적으로 종교에 대한 물음표가 달려있었다. 이와는 반대로, 엔즐토피가 필기체로 빽빽하게 쓴 관찰일지에는 엄격함이 있었다. 어느 꽃의 수술 하나를 집어서 그 특성을 서술하는 일은 하나님의 장대한 선언과 너무도 달라 보였다. 레위기 11장 41절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땅에 기어다니는 모든 기는 것은 자등한 즉......'이라고 말했다. 땅에 기는  모는 것이 가증하다니, 어떻게 그렇게 주장할 수 있을까? 무슨 증거로? 관찰 기록은 있나?

 결국 모든 일이 이렇게 되다니 기묘했다. 엘리자베스는 바다를 떠났지만 얻은 것은 이것, 서부의 드넓고 거친 풍경이 아닌, 경사가 완만하고 겉흙이 부드럽고 작물도 빨리 자라는 뉴잉글랜드의 농장이었다. 타협이었다. 두 번째 결혼으로, 엘리자베스의 깊은 곳 어디가 딱딱해졌다. 어느 때보다 행복하기는 했다. 그러나 자신의 운명으로 정해진 일을 놓쳤다는 기분은 떨칠 수 없었다. 

 "밖은 어때?" 남자는 음모를 꾸미는 분위기를 살짝 풍기며 물었다.
 "안 좋아요. 어른들은 가끔 괴상해요." 그 말로, 나는 그 남자를 '어른의 범주'에서 빼는 모험을 하는 한편, 그럼으로써 '비(非)어른'이라는 나의 동지로 만들었다. 나는 그 남자가 실제로 어른이든 아니든 스스로 '비어른'의 범주에 속하고자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지"
 남자의 대답에, 나는 우리가 동지라는 생각을 더 굳혔다.

 §노트 G101의 '무엇을 떠올리게 하지만 꼭 꼬집을 수 없는 냄새들'
 그 자체로 하나의 단일한 냄새가 있는지, 아니면 모든 냄새는 더 작은 부분으로 쪼갤 수 있는지,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인간의 감각 중에서 후각이 가장 까다로운 것 같다. 후각에는 딱 맞는 언어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은 냄새를 이야기할 때마다 맛이나 기억이나 은유를 써서 언급한다. 어머니의 토스터가 폭발했을 때, 아버지는 주방으로 와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제4연옥에 들어온 것 같은 냄새군. 여보, 연옥 현틀에서 잠자고 있었어?"
 레이튼은 위층에서 소리쳤다. "와, 불붙은 방귀 냄새 같아!"
 누나는 '변기 커버 노트북'에서 고개를 들고 말했다. "어린 시절에 맡던 냄새네." 누나의 말도 옳았다.

 "고마워요. 이제 가야 할 것 같아요. 안 그러면 여기서 뭘 했는지 설명해야 할지도 몰라요."

 "화장실에 있었어요."  눈물이 솟았다. 아직은 집센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집센의 말투가 누그러졌다. "미안하다. 다그치려는 건 아니었는데....... 이 행사를 잘 치르고 싶어서 그랬어."
 집센이 미소를 지었지만 눈에는 여전히 화가 가득했다. 언제라도 수면 위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집센의 눈을 보며 갑자기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어른들의 감정은 아주 오래, 사건이 끝나고 나서도 아주 오래, 카드를 보내고 사과를 하고 다른 사람들이 모두 이사하고 나서도 아주 오래, 오랫동안 그대로 간직할 수 있다고. 어른들은 낡고 쓸모없는 감정의 꾸러미였다.

 그는 계속되는 박수에 쑥쓰러운 듯,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나도 박수를 보냈다. 모두가 박수를 계속 치면서도 아무도 그 이유를 모르는 듯 했지만, 어쨌든 기분은 좋았다. 친분이 있든 없든 존경을 표시할 만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에게 존경을 표시하는 일은 기분 좋은 일이니까.

 페라로 박사는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임에 틀림없었다. '진짜배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성인 여성과 커피
 나는 페라로 박사가 우리 어머니와 잘 어울릴 수 있을지, 두 사람의 관계를 유지할 만한 지적인 존중을 서로 품을 수 있을지 궁금했다. 나는 어머니에게 친구가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어머니에게는 커피를 함께 마시고, 미토콘드리아의 예민한 속성을 두고 함꼐 웃고, 동료의 논문에 숨은 정치적인 아부를 놓고 비판할 여자 동료가 필요했다. 어머니는 페라로 박사에게 남편의 말 없는 성격을 털어놓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 성인 여성들이 문을 닫고 방 안에서 하는 일이라면 뭐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페라로 박사는 우리 어머니가 과학자로서 아무 발전을 이룰 생각이 없다는 사실을 알면 눈썹을 찌푸리지 않을까? 페라로 박사는 커피 머그잔을 내려놓고 공허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이 한물간 과학자에게서 벗어나기만을 기다릴지도 모른다. 그 뒤로는 어머니의 전화도 안 받을지 모른다. 어쩌면 어머니는 벌써 이렇게 동료들에게 버려졌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학자들이 벌써 머그잔을 내려놓고 우리 어머니를 한물간 사람으로 취급했는지도 모른다.

 "아, 그럼, 그럼, 그렇고 말고!" 선디가 환호하고 아주 이상한 춤을 추기 시작했다. 훌라후프를 돌리는 듯이 느릿느릿 엉덩이를 빙빙 돌렸다. 곧 다른 사람들도 끼더니, 모두가 이 느린 훌라후프 춤을 추며, 내 앞으로 다가와서, 내가 모르는 무엇을 안다는 듯 머리를 앞뒤로 흔들었다.
 §노트 G101의 '춤추는 성인 남자'
 성인 남자가 이렇게 춤추는 모습을 보니 즐거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불편하고 부끄럽기도 했다. 화장실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초등학교 2학년생 꼬마가 천진난만하게 코를 파는 모습을 보았을 때와 비슷했다.

 마주치는 사람은 누구나 출입증을 목에 걸고 메모판을 들었다. 출입증 목걸이와 메모판이 정말 많았다. 앞뒤로 종종걸음치는 사람이 정말 많았다. 모두 불행해 보였다. 큰 비탄이 아니라, 약한 경멸에 점차 익숙해진 표정에 가까웠다. 어머니가 일요일에 예배를 볼 때 자주 짓던 표정과 비슷했다.

 다리 없는 군인이 악수를 청하며 인사했다. "안녕, 나는 빈스라고 해."
 나는 악수를 하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티에스에요."
(중략)
 나는 용기를 내서, 사지가 절단되고 나서도 마치 남아있는 듯 느끼는 증상에 대해, 아직도 다리가 있는 듯 느껴지는지 물었다.
 "있잖아, 좀 재밌기도 해. 오른쪽 다리는 사라진 걸 알아. 없는 걸 확실히 느낄 수 있어. 몸이 확실히 느끼고 있어. 그렇지만 왼쪽 다리는 살아나. 다리가 하나뿐이 기분이 들어서 내려다보면 이런 생각이 들어. '아니, 젠장, 그 하나도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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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처 받을까 하는 두려움은 잠시 미뤄두자. 예방주사도 자국이 남는데 하물며 진심을 다하는 사랑이야 어떻게 되겠니.

 우리는 우리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정복하려고 그들을 추적하기에 이른다. 이것이 자아 존중감을 증가시키는데 도움이 되리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고마운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살기에도 짧은 세상에 말이야.

 너무 옳아서 잔인한 말씀

 당신은 진정 성장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진정 깨어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진정 행복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원하는 것은 안도하는 것입니다. 치유란 늘 고통스러운 것이니까요. 그것은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니까요.
 당신은 아무도 사랑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 사람에 대한 편견과 기대라는 관념을 사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은 결코 누구도 신뢰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로지 그 사람에 대한 자신의 판단을 신뢰할 따름입니다.
 결국 이렇습니다. 사람들은 성장하기를 진실로 원하지 않습니다. 달라지기를 진실로 원하지 않습니다. 행복하기를 진실로 원하지 않습니다. 어떤 분이 말하더군요.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려고 하지 마세요. 골치만 아프게 될 테니까요.'

 엄마는 충분히 불행했음에도 변화하기가 두려웠단다. 왜냐하면 고통보다 더 두려운 것은 미지이기 때문이지. 설사 여기서 괴로움이 있다 해도 그것이 내가 아는 것이라면 그게 더 나았던 거야.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대로 내 삶을 사는 것, 그건 이기적인 것이 아닙니다.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대로 남에게 살도록 요구하는 것, 그것이 이기적인 것입니다. 이기심은 남들이 나의 취향, 나의 자존심, 나의 이득, 나의 기쁨에 맞추어 살도록 요구하는 데 있습니다. 부인은 내가 나의 행복을 희생하여 당신을 사랑하기를 원하시겠습니까? 부인은 부인의 행복을 희생하여 나를 사랑하고 나는 나의 행복을 희생하여 당신을 사랑하겠고, 그래서 불행한 사람 둘이 생겨나겠지만, 사랑 만세!

우리는 나이 들수록 의문을 품지 않고 질문을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자신이 배운 삶의 가치를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그렇게 되면 어느 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지는 것이 된다. 절대적이고 당연한 가치들이 존재하는 곳에서 능동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네가 온전히 너의 삶은 살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선 너와 네가 사는 세상을 낯선 시선으로 볼 필요가 있다. 좀 더 객관적인 눈으로 인생을 멋지게 설계하기 위해서 말이다.

 엠마오로 가는 길이란, 예수가 죽은 후 그의 제자 둘이서 엠마오로 가는 길에 어떤 훌륭한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그 길을 말하는 거야. 근데 그 어떤 사람이 바로 자신들이 죽었다고 슬퍼하고 있는 바로 그 예수였어. 그들은 예수의 죽음으로 몹시 실망하고 있어서 부활한 예수가 함께 걸어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었던 거지.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그 스승이 죽어서 부활한다는 사실보다 어쩌면 그 스승의 죽음으로 인해 상심하고 있는 자신들의 마음이 더 중요했을지도 모르니까.

 고통 당하는 사람은 자신의 고통을 자신과 동일시하기 때문에 고통과 작별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왜냐하면 고통은 그가 알고 있는 것이지만, 그 고통을 놓아버린 후에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그가 모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늘 우리를 비난하는 사람들을 배심원 석에 앉혀놓고, 피고석에 앉아 우리의 행위를 변명하고자 하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다.

 당신이 당신을 재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는 그 잣대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주여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 하게 해주시고,
 내가 할 수 없는 일은 체념할 줄 아는 용기를 주시며,
 이 둘을 구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세 사람이 있는데, 가장 힘센 자가 가장 힘없는 자를 착취하려 할 때 나머지 한 사람이 '네가 나를 죽이지 않고서는 이 힘없는 자를 아프게 하지 못 할 것이다'라고 말할 때 천국은 이미 이곳에 있다.

 미움을 표현하기 위해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 외에는 그 방법을 모르는 우리 상처받은 인간들

 고난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온다. 아니 어쩌면 불공평하게 오지. 착하게 사는 사람에게나 나쁘게 사는 사람에게나 공평하게 닥치니까.

 내가 나 아니기를 바라던 동경이 얼마나 큰 형벌인지

 내가 나 자신이 아니기를 동경하여 시기심으로 눈이 멀어버린 듯한 그런 친구

 사람은 자신의 불행을 함께 한탄하는 것을 다릉 사람을 위로한다고 착각할 때가 많아. 진정한 우정은 그의 성취에 그의 성공에 함께 진심으로 기뻐해 줄 수 있는가 아닌가에 있고, 이런 일은 대개는 '스스로가 스스로임을 좋아하고 행복한', 스스로와 스스로의 삶에 긍정의 눈을 뜨고 있는 사람들만이 해낼 수 있는 일이더구나.

 우리의 동경이 현세에서 이루어지지 않아도,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우리를 우리가 바라는 대로 사랑하지 않아도, 우리를 배반하고 신의 없게 굴어도, 삶은 어느 날 그것이 그래야만 했던 이유를 가만히 들려주게 될 거라고, 그날 너는 길을 걷다가 문득 가벼이 발걸음을 멈추고, 아하, 하고 작은 미소를 지을 수도 있다고. 그러니 두려워 말고 새로이 맑은 오늘을 시작하는 것이라고 말이야.

 우리는 언제나 열렬히 사랑하기에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서둘러 사랑하려고 하기 때문에 문제를 일으키는 거야.

 연애에는 성공할 수 있는 전략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랑에는 실패하는 일이야. 네 목표가 연애를 잘 하는 것이라면 그런 책들이 유용하겠지만 네 꿈이 누군가와 진정으로 사랑하는 일이라면 그건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아.

 진정한 자존심은 자신에게 진실한 거야. 신기하게도 진심을 다한 사랑은 상처받지 않아. 후회는 언제나 상대방이 아니라 자신을 속인 사람의 몫이란다.

 더 많이 사랑할까봐 두려워하지 말아라.

 누군가가 자신의 엄격한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했을 때, 자신의 비현실적 기대를 탓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 상해서 상대를 지목하고 그를 독선적으로 비난한다.

 가끔 사람들은 말하지. '인생에서 상처 받은 사람등이 한 둘이야?' 엄마는 이런 어법을 아주 싫어한다. 암으로 죽어가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너의 후두염이 경시 받아도 된다는 뜻은 아니니까. 인생은 고통 콘테스트가 아니잖아.

 어느 해질 무렵 수녀님들은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는다. 나가보니 헐벗은 나환자가 추위에 떨고 있었다. 마더 테레사는 즉시 음식과 담요를 내 주었다. 그런데 그 가난한 나환자가 진지하게 말했다.
 "수녀님 오늘 제가 여기 온 것은 뭔가 얻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수녀님이 어디선가 큰 상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오늘 제가 구걸해서 번 돈을 선물로 드리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수녀님 비록 약소하지만 제 선물을 받아주십시오."
 참고 참았는데 이 헐벗은 나환자가 결국 엄마를 울리고 말았지. 정말 그럴 수 있을까? 이 이야기는 정말일까? 그래, 하지만 우리는 안다. 그럴 수 있다는 걸.

 위녕, 가을이 익어가고 있다. 어제는 태풍이 대한해협을 통과했다지. 태풍은 열대의 뜨거움을 강제적으로 온대지방으로 전달해 내는 자연의 방식이라는데, 고여 터질 것 같은 열대의 정열이 온대지방으로 오면 거의 폭력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엄마는 오래 전에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본 일이 있어. 마음 속의 압력들을, 사소한 분노들을, 실망감과 상처들을, 어쩌면 뜨거운 사랑까지도, 조금씩 처리하는 법을 익히지 않으면 그렇게 내 마음의 뜨거움들도 다른 이들에게 가서 폭력으로 변하지 않을까 함께 겁이 났었지.

 엠마뉘엘 수녀님은 소르본에 진학하는 기회를 놓치고 자신의 노트와 책을 불살라 버린 후 빈민가로 들어간다. 그녀는 어느 날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생을 마친 후 신 앞에 섰을 때 신이 그녀에게 소르본을 나왔는지 아닌지 묻지 않을 거라는 것을 말이야.

 왕의 기분을 전환시켜 자기 생각을 못하게 하려는 생각밖에 없는 사람들로 왕은 둘러싸여 있다. 아무리 왕이라도 자기 생각을 하게 되면 불행해지니까.

 창작이 다른 직업이 지니는 기본적인 고통과 다른 근본적이고 특이한 고통을 지닌 듯 폼 잡으며, 그것은 밥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듯, 글을 쓴다는 것이 무슨 하늘이 내린 형벌인 듯 포즈를 취하는 사람들.

 세계 명작 동화에 사람이 저지를 수 있는 온갖 종류의 잔인과 범죄가 나오는 걸 보면 사실은 우리의 바람과는 달리 그저 사실인 거야.

 사막을 횡단하는 것은 단숨에 되지 않는다. 사막을 횡단하려면 작은 걸음들이 수백만 번 필요하다. 그리고 한걸음 한걸음이 길의 한부분이 되고 경험의 일부가 된다. 모든 탐험이 매번 진짜 삶이었다. 고비 사막의 횡단은 성공적이었다. 물론 고비 사막을 횡단 했다고 해서 내가 현명해 진 것도 아니고 녹초가 된 것도 아니다. 늙어보이게 되었을 뿐이다.

 위녕, 이 다음에 너는 이 시간들을 어떻게 기억할까, 하는 생각해본 적 있니? 엄마는 가끔 생각해. 시간이 많이 흐른 후, 지금 믿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이 하나도 중요해지지 않을 때가 있다면 그때 나는 지금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그때 내가 내 앞에 주어진 생을 어떻게 대하고 있었던가 하는 거 말이지.

 아마 2001년이라고 기억되는데 봄철에 아주 심한 가뭄이 들었다. 논들이 바싹바싹 타들어가고 온 나라에 심어놓은 모들이 말라죽을 위기에 처했었지. 양수기가 동이 나고 농부들은 온 힘을 다해 논들에 물을 대었단다. 대단한 가뭄이었어. 그리고 그해 가을이 되었어. 해마다 초가을이면 찾아오는 태풍 중에서 가장 거센 것이 한반도를 덮쳤지. 모두들 가뭄을 겨우 이겨낸 들녘에 다시 바람이 부는 걸 보니 이번 해 농사는 망쳤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결과는 생각과는 아주 딴판이었어. 그토록 거센 태풍은 놀랍게도 벼 이삭들을 거의 쓰러뜨리지 못했어. 심지어 그해 가을에는 사상 유래가 없는 풍년이 들었단다. 전문가들이 무심히 이야기하더구나. 이 심한 태풍에도 피해가 거의 없었던 것은 봄날의 가뭄 때문이었다고. 그러니까 봄날에 벼들이 막 땅에 제 뿌리를 묻었을 때 부족했던 물 때문에 깊이 뿌리를 내려야 했고, 그래서 거센 태풍에도 불구하고 벼들은 쓰러지지 않았다고 말이야.
 변명하는 말이 진정 아니기를 바라지만, 젊은 날의 고통은 얼마나 가치 있고 귀중한 것인지 엄마는 알게 되었단다. 왜 젊은 시절의 고생은 사서라도 하라는 말이 있는지도 알게 되었단다. 그건 그냥 방황하는 젊은이들을 위로하는 상투어가 절대로  아니었다는 것을. 젊은 시절은 삶의 뿌리를 내리는 계절. 무사태평하게 그 시절들을 보내다가 이미 모든 것이 무겁게 익어버린 가을날에 태풍이 덮치면 그건 정말 어려운 일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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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 개의 단어가 있습니다. 이중 나머지 단어와 관련 없는 단어 하나를 찾아보세요. 치과, 이빨, 스케일링, 충치, 치약, 서울역, 칫솔, 사랑니, 틀니. 이상입니다. 어려운가요? 어렵지는 않지만 왠지 당신이 생각한 답이 정답은 아닐 것 같은가요? 그게 정답이라면 이런 문제를 냈을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드시나요?
 정답은 서울역입니다. 당신이 생각한 답과 같은 서울역입니다. 세상 모든 문제는 답을 몰라서 못 푸는 게 아니라, 자신 없어 하거나 주저하다가 못 푸는 것이지요. 지금 당신이 안고 있는 크고 작은 문제들, 당신이 알고 있는 답 그대로 행동하시면 다 풀 수 있습니다. 돌아가거나 비켜가려 하지만 않는다면.

 외로운 것보다 더 외로운 것은 외로움을 들키는 것이다.

 고래를 사랑하니?
 사랑해. 너무너무 사랑해. 하지만 난 수영을 못 해. 고래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없어. 절망이야.
 바닷물을 다 마셨어야지. 사랑한다면.

 바다는 갈매기가 자신에게 하루에도 수백 번씩 키스를 한다고 믿는다. 키스의 황홀함에 취해 물고기를 도둑맞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다.

 문제를 미리 가르쳐주는 시험
 죽어서 하늘나라에 가면 하느님이 뭐라고 묻는지 아십니까.
 후회 없이 살았는가?
 문제를 알았으니 지금부터라도 모범답안을 만들어 보십시오.

 우산을 들면 손 하나가 사라진다. 우산을 들지 않은 손으로 가방도 들어야 하고, 뒷주머니에거 지갑도 꺼내야 하고, 길을 묻는 사람에게 길도 가르쳐주어야 한다.
 하지만 우산을 던져버리면, 자유롭던 나머지 손 하나까지 사라지다. 두 손을 모두 비를 막는 데 써야 한다. 느긋하던 두 발까지 분주하게 움직여야 한다.
 인생에서 만나는 크고 작은 불편들이 어쩌면 우리를 자유롭게 해 주는지도 모른다.

 용돈에는 두 종류가 있다. 주는 것과 드리는 것.
 주는 것은 갈수록 늘어나고, 드리는 것은 갈수록 줄어든다.
 지갑 속에 인생이 있다.

 아들이 엄마의 등을 밀어줄 만큼 자라면 더 이상 여탕에 데려갈 수 없습니다.
 아들의 손을 너무 꽉 쥐지 마세요.

 당신은 9회 말 투아웃에 역전홈런을 꿈꾼다. 그래서 9회가 오기 전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그래야 9회 말에 모든 힘을 집중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야 9회 말이 더 짜릿하고 통쾌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말이다. 야구도 인생도 7회 콜드게임으로 끝날 수 있거든. 지금 서 있는 타석에서 최선을 다해보는 게 어때?

 달과 별 중에 누가 더 외로울까. 힌트는 별은 무수히 많은데 달은 혼자라는 것.
 그래, 별이 더 외롭지. 무수히 많은 속에서 혼자인 게 훨씬 더 외롭지. 당신처럼. 나처럼.

 와인 코르크 마개를 뽑아내는 법
 대고, 긋고, 벗기고, 대고, 뚫고, 돌리고, 돌리고, 걸치고, 올리고, 다시 걸치고, 다시 올리고, 뽑고. 와인을 마신지 5년 만에 코르크 마개 뽑아내는 법을 제대로 배웠다. 열두 단계였다. 애써 힘을 줄 필요도 없이 물 흐르듯 열두 단계를 거치면, 코르크 마개는 성문을 열고 투항하는 병사처럼 병 밖으로 비실비실 기어 나온다.
 그렇다면 지난 5년은? 성문을 제대로 열 줄도 모르면서 어떻게 와인을 마셨을까? 그냥 뽑고, 마시고. 그래, 그냥 뽑고 마셨다. 그걸로 큰 불편이 없었다. 아니, 충분했다. 이젠 와인을 만나면 실수 없이 코르크 마개를 뽑아내야한다는 생각부터 든다. 와인 마실 자격이 있다는 것을 코르크 마개 뽑아내는 솜씨로 보여주려 한다.
 혹, 우리는 배우지 않아도 되는 것들을 너무 많이 배우며 사는 것은 아닐까?

 동태에게 명태 시절의 기억을 물으면 한 마디도 대답을 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동태의 머리를 툭툭 치며 한심하다고 야단치지 마라. 기억을 되살려준다며 동해로 질질 끌고 가지도 마라.
 동태는 기억이 안 나서 대답을 못하는 게 아니라 입이 얼어서 대답을 못하는 거니까. 말 없는 사람을 만나면 혹시 내가 그의 입을 얼게 하지 않았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야구계에 죄송한 말씀
 야구계에서는 비가 내려도 경기를 할 수 있는 돔 구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잔디계에서는 스파이크로 잔디를 찢어놓는 것도 모자라 이젠 비마저 앗아가려고 하느냐는 반발이 나오고 있다. 비계에서도 우리를 똥물 취급한다며 항의가 빗발치고 있다. 햇살계에서도 공짜로 주는 햇살을 마다하는 멍청한 짓이라며 혀를 차고 있다.
 야구계의 주장은 야구계 일부의 의견일 뿐이다. '들에서 하는 운동'이라는 이름을 바꾸지 않을 거라면, 잔디와 비와 햇살도 야구계 소속이니까.

 욕심 많은 타잔 이야기
 타잔은 정글 속에서 선악과를 발견했고 이를 원숭이 몰래 혼자 먹어치운 것이 분명해. 그게 아니라면 혼자만 팬티라는 문명을 두르고 있는 이유를 설명할 수가 없어.
 그리고 혼자 먹어치운 그 선악과 때문에 동물들에게 집단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게 분명해. 그게 아니라면 동물의 왕국에 한 번도 등장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할 수가 없어.
 문제는 따돌림을 견디지 못한 타잔이 정글을 탈출했다는 거야. 그게 아니라면 뭐든 혼자 먹어치우려는 사람이 우리 주위에 갑자기 늘어난 이유를 설명할 수가 없어.

 화분
 식물의 감옥. 그것도 독방. 그리고 종신형. 당신이 돕지 않으면 탈옥은 불가능.

 약속
 새끼손가락의 유일한 기능. 그러나 지키지 않으면 새끼손가락의 기능은 마비되고, 새끼손가락의 기능마비는 결국 손가락 주인의 전신마비로 이어지고 만다.

 게으름
 느림이라는 말과 가장 헷갈리는 말. 느림이 천천히 달리는 자동차라면 게으름은 고장 나 서 있는 자동차. 즉, 게으름은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정신상태의 문제.

 상상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힘. 현실을 무시한다는 점에서 공상이나 망상과 비슷해 보이지만 상상은 그들에 비해 현실을 바꾸는 힘이 훨씬 세다. 그래서 상상력이라는 말은 있고 공상력이나 망상력이라는 말은 없다.

 시험
 쪽지시험, 수능시험, 입사시험, 면허시험, 승진시험....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끝도 없이 반복되는 인생의 생존 게임. 그 모든 시험 중에서 가장 중요한 시험은 다음 시험. 지나간 시험에 미련을 갖는 건 미련한 짓이다.

 나이
 사람의 먹을거리 중에서 가장 먹기 까다로운 메뉴. 먹기 싫어도 먹어야 하고, 한 번 먹으면 뱉을 수도 없고, 한꺼번에 여럿 먹을 수도 없고, 죽을 때까지 꾸준히 먹어야 하고, 너무 많이 먹으면 죽는다. 그러나 이 까다로운 나이를 먹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 먹은 만큼 값을 하는 것.

 사람
 무인도에 데려다 놓으면 일주일도 못 버티는 연약한 동물. 그러면서도 무인도에서 살아남는 법이라는 책을 쓰는 참 재미있는 동물. 약하면서 늘 강한 척.

 결혼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하는 게 아니라, 가장 오래 사랑할 사람과 하는 것. 즉, 결혼은 사랑의 완성이 아니라 사랑의 시작.

 얼굴
 편지 겉봉에 붙은 우표. 예쁘다는 이유로 잠깐 눈길을 끌 수는 있지만,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은 늘 편지 속에 눌러 담은 마음.

 컴퓨터
 사람보다 빠르고, 사람보다 똑똑하고, 사람보다 정직하고, 사람보다 충직하고, 사람보다 재미있고, 사람보다 재주가 많은 사람의 친구. 단점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 그래서 마주 볼 수는 있어도 나란히 앉을 수 없다는 것.

 동화
 읽으면 마음이 깨끗해지는 이야기. 읽지 않아도 마음이 깨끗한 어린이들에게 왜 읽으라고 하는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누군가를 꼭 설득해야 할 일이 있다. 그러나 도무지 설득당할 것 같지 않다. 그래도 설득해 내야 한다. 인내심을 가지고 한 번, 두 번, 세 번...... 열 번을 설득한다. 그래도 꿈쩍하지 않는다. 이제 어떡해야 하나?
 몰라서 묻는가? 열한 번 설득해야지.

 미국으로 유학을 간 친구에게서 편지가 왔다. 힘들다로 시작해서 죽겠다고 끝났다. 나도 힘들고 죽겠으니 다음부터는 좋은 소식만 전하라고 답장을 했다. 며칠 후, 제법 두툼한 편지가 다시 왔다. 편지지 다섯 장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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