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0'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10.28
  2. 2009.10.26

Trackback 0 And Comment 2
  1. Ray Ban outlet 2013.07.20 09:40 address edit & del reply

    당신 매력있어, 자기가 얼마나 매력있는지 모르는게 당신매력이야

  2. ugg boots 2013.07.22 15:42 address edit & del reply

    당신은 내가사랑할 만한 사람이 아니예요,사랑하지 않으면 안될 사람이예요.

[본문 조각 스크랩]

 몸이 먼저 이 세상을 경멸하고 있었다. 증오하고 있었다. 못 견뎌 하고 있었다. 부적응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반응이라고도 부르지 않는다. 경멸이라고 불러야 속이 후련하다.
 그때 나는 다섯 살, 그때는 몰랐지만 그것이 권태였다.
 오래 살아서, 그런 걸 다 알아차렸다고 해서 그 느낌이 엷어지지는 않았다. 고통의 깊이는 변화가 없다.

 그렇게 의미심장한 듯한 경험을 함께 했는데도 아무 관련 없이 멀리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의아하다. 같은 마을에서 태어나 이웃으로 오래 살다가 함께 바다에서 흔들리다가 헤어졌는데 그 후에는 아무 관련 없이 그냥 살아간다. 그러다가 낯선 곳에서 따로따로들 죽어간다.

 언니가 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우리가 자는 방에는 언니 책상과 내 책상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내 책상은 검고 육중한 것이었다. 의자에 앉아서, 서랍이 양쪽으로 기둥처럼 받치고 있는 책상에서 공부하는 나의 모습을 미리 상상하곤 했던 것이다. 나의 검은 책상은 평생토록 만족을 주었다. 아무도 모르는 깊은 만족을 아주 깊게 흘리면서 나는 평생을 살았다.

 아버지는 부두노동을 했다. 미국 배에서 일했다. 아버지가 배에서 스케치북과 크레용을 얻어 왔다. 노동을 쉬는 날에는 우릴 데리고 산으로 갔다. 집 가까운 군청산에 가서 그림을 그렸다. 아버지는 내가 그리는 걸 지켜보고 있었다. 그럴 때 나는 편안하고 의젓해졌다. 상상화를 그렸다. 아버지는 내 그림을 두고 자신의 욕구를 표출했다. 내가 그리는 걸 지켜보면서, 내가 산꼭대기에만 그림을 그리면, 산 중턱에도 꽃을 그리라고 했다. 그러면 나는 순순히 그렇게 했다. '아 그렇구나. 산에는 꽃이 골고루 피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순순히 꽃들을 전면에 가득 채웠다. 아버지가 그러길 원하는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어느 날 환하게 꽃 핀 벚꽃나무 아래서 나 혼자 소꿉장난을 하고 있었다. 뻔한 레퍼토리. 벽돌조각을 주워다가 돌맹이로 부수면서 노는 일, 여러 종류의 가루를 내는 일, 풀을 뜯어다가 음식이라고...... 그럴 때 온화하게 생긴 한 소년이 다가왔다. 잘생긴 외모에 어울리게 아주 성격이 부드러웠다. 게다가 내가 주는 대로 다 먹었다. "이게 식혜야 마셔"하고 내밀면 "아, 맛있다' 하면서 먹는 시늉을 했다. 잘 웃고 거역하지 않았다. 순순히 놀이가 진행되어서 아주 즐거웠다. 그 소년과 놀면서 인생에서 첨으로 식구 아닌 다른 사람과 행복하게 지내는 걸 체험했다. 그러면서 그때 생각했다. 아주 커서도 이런 좋은 사람을, 주는 대로 먹어주는 사람을, 잘 웃고 온화하고 부드러운 인간을 만나면 아주 행복하게 살 수도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양화가 "잠 안 오는 약을 먹고 공부하니까 진짜 잠이 안 오더라" 하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도 그렇게 하라고 했다.
 그날 밤부터 약 먹고 공부했다. 그 후부터 자신을 쫘악 조이면 남을 놀라게 할 만큼 성적이 오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양화로 인해서 자기 자신을 보는 눈을 한 등급 업그레이드한 셈이다.
 이 사건은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 일로 자신을 전혀 밖의 시선으로 볼 줄 모르던 무의식의 아동기가 끝났다. 학교 성적 같은 건 그전까지는 머릿속에 없었다. 그런데 그 사건 이후 명예욕이 싹튼 것이다. 나도 명예로울 수 있고, 사람들이 놀란 경탄의 눈으로 나를 볼 수도 있다는 정신적 풍경을 느끼게 된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자기 자신을 흐뜨리지 않는 어른

 사람이 태어나서 할 수 있는 최초의 일도, 최고의 일도, 최후의 일도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라는 것을 몸소 실천하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그 인형을 그리워한다.

 조금 더 자라서 집에 손님이 오면 아버지는 나를 불러 그들의 모습을 그리게 했다. 내가 몰두해서 그림을 그리고 나면 아버지는 "똑같지! 사진이야!" 하며 나를 칭찬했다. 아버지는 혼자서 나를 칭찬해대는 것도 모자라서 모든 손님들로부터 칭찬을 받아냈다. 그때는 그 말을 무심히 흘려들었다. 귀찮다는 생각도 앴지만 그러한 말들이 나와 다른 사람들과의 차이를 만들었음을 깨달았다.

 태풍이 불었다. 가로수가 뽑혀 넘어졌다. 전봇대도 너어졌다. 비도 많이 왔다. 학교에 갔다. 전교생 중에서 세 명쯤만 학교에 왔다.
 교감 선생님이 말했다.
 "너희들은 아이큐가 발바닥이다."
 고등학교 때 이야기다.
 나는 지금도 생각한다. 우리 세 명은 과연 옥먹어야 마땅한가?

 안데르센 동화.
 내 인생에 영향을 끼친 책 중에는 <백조왕자>가 있다. 역시 불행에 처한 공주 이야기다. 공주는 모함을 받아 궁궐에서 쫓겨난다. 열한 명의 오빠들, 곧 왕자들은 백조가 되어 하늘을 난다. 공주를 괴롭히는 사람들이 마술을 걸어서 왕자들을 백조로 변신시킨 것이다. 공주가 공동묘지에서 자라는 거친 풀로 열한 벌의 옷을 짜면 왕자들이 새의 몸을 버리고 다시 사람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한다. 마술을 푸는 데는 언제나 무서운 조건이 따라붙는다. 옷을 다 만들 때까지 절대로 말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말을 한 마디라도 하면 이제까지의 노력이 물거품으로 돌아가버린다. 백조는 영원히 백조로 남게 된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나는 초등학생이었다. 옷을 한 번도 만들어본 적이 없는 어린아이가 혼자서 어떻게 옷을 만드나. 그것도 거친 풀로! 나는 그것을 걱정하였다. 일을 열심히 하면 말을 안 하는 것이 당연하지. 어른들도 일을 열심히 할 때는 말하지 않는다. 우리도 공부할 때는 말하지 않잖아 하면서 그런 조건을 우습게 생각했다. 나같이 평범한 초등학생이 말 안 하는 건 아주 쉬운 일인데 모합받는 사람들한테는 무지 어려운 일이란 걸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사람들이 공동묘지에서 거친 풀을 베어내서 풀 옷을 짜고 있는 공주를 가만 놔둘리가 없었다. 공주는 미친 듯이 열심히 일했다. 손이 거친 풀에 베어서 상처가 나고 거기서 피가 흘러도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풀을 베었다.그리고 그것으로 옷을 짯다. 공주의 아름답던 치장은 다 흐트러지고 머리는 산발이 되고 옷은 찢어지고 더러워졌다. 공주는 일 초라도 다른 데 신경 쓸 수가 없었다. 오로지 오빠들을 구해내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일에 몰두했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왕따 시키다가 차츰 미쳤다고 했을 것이다. 드디어 마녀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을 것이다. 변명하라고 외치기도 했을 것이다. 그 대목에서 말 안 하기가 그렇게 힘들고 안타까운 일이라는 걸 처음으로 깨달았다. 책을 읽는 내 가슴이 고통으로 저며드는 듯했다.
(중략)
 마녀라고 부르면서 변명을 요구하는 군중들을 생각해냈다. 그러면서 그 침묵을 기엇해냈다. 헝클어진 모습으로 미친 듯이 풀옷을 짜는 공주를 생각해냈다. 그러면서 그 침묵을 기었했다. 그리고 그 몰두를 같이 기억해냈다. 그렇다. 말없이 몰두하는 것이다. 말없이 열심히 내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이 그림이 완성되면 세상이 내게 건 마술도 풀릴 것이다. 나는 그런 심정으로 그림을 그렸다.
 변명은 낭비다. 변명은 내가 나아갈 길이 아니다. 오로지 내 속의 나침반만 바라보면서, 내 감성이 이끄는 대로 그림을 그려나가면 길이 열릴 것이다. 내가 할 일은 침묵 속의 몰구, 그것 뿐이다.

 하지만 머릿속을 질서정연하게 정리하는 일은 중요하다 생각하면서 세 번을 읽었다. 그 시절 나는 늘 자신에게 질문하고 명확하게 대답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자신에게 질문하고 명료한 답을 제시해야만 잠이 왔다. 대답이 시원찮으면 다시 얼어나서 참고서적을 뒤적여서, 막히는 부분에 대해 명료하게 답을 만들어내고서야 잠들었다.

 "거, 여자 감방, 조용히 해!"
 그래도 그 여자는 멈추지 않고 춤춘다. 다시 조용히 하라고 소리쳐도 우리는 듣지 않는다. 말 잘 듣는 사람들이었다면 우리가 왜 여길 오냐 하고 나는 속으로 생각하는데, 그 젊은 여자는 아무 생각도 없는 듯 즐겁게 춤춘다.

 석굴암에서 입장료 낼 때, 핵생인데 왜 할인 안 해주냐고 서서 한 10분쯤 떠들고 있었다. 학생 할인이 안 된다고 설명해줘도, 왜 안 되냐며 비분강개하고 있었다. 실컷 화내라 하면서 나는 좀 떨어져 서서 구경하고 있었다. 무슨 증명서를 몇 장이나 꺼내 매표원에게 펴 보이면서 떠들고 또 떠들었다. 돈 한 푼으로 부들부들 떠는 모습이 본받을 점이라고 느꼈다. 가끔 기를 쓰고 푼돈을 깎으려다 결국 실패한, 분기탱전한 그 청년의 모습이 떠오른다.

 결혼은 백마 탄 왕자와 골 빈 여자가 학예회 하듯이 벌이는 연극이 아니다. 결혼은 내 진보적인 친구가 거품 물고 떠들어대듯이 합법적인 매춘도 아니다. 결혼은 망상도 도피도 아니다. 결혼은 완전한 사람으로서 살기 시작하는 일이다.
 나의 전체를 사용해서 책임지고 독립해서 스스로 사는 것이다. 내가 아는 모든 지식을 이용해서 밥 짓고 빨래하고 나 스스로를 위해 내 주변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누군가와 함께, 그것도 꼭 나같이 멍청하고 자신 없고, 쭈뼛거리며 겨우 살고 있는 사람과 모여서 서로를 거울처럼 비춰보며 우리끼리 사는 것이다.
 그렇다, 결혼이란 허영도 망상도 타락도 아니다. 결혼은 건강하고 씩씩하고 힘찬 생활의 시작이다. 뭐든지 스스로 하는, 두 또래끼리 모여서 모든 걸 그들끼리 결정하고 실천하는 모험의 생활이다. 탐구여행이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선택의 기쁨'을 느꼈다. 필통이나 연필, 손수건 같은 걸 직접 내가 골라서 샀다. 진열대 앞에 서서 눈에 맨 먼저 강하게 띄는 걸 샀는데, 그 필통이 다 깨지고 손수건이 해질 때까지도 나는 내 물건에 긍지를 느끼며 사랑했다. 나의 선택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는, 자신의 직감에 대한 신뢰감이 그렇게 어릴 때부터 자라나고 있었다.

 나의 남편이 내게 어떤 헌신적인, 소중한 일을 했는가 하고 누가 물어오면 나는 한동안 멍해진다. 억지로 끼워 맞추듯이 몇 가지를 집어내 본다. 진통이 시작되었을 때 깊은 밤에 잠자지 않고 나를 병워에 데려다준 일, 어느 생일날 불쑥 내민 뜻밖의 선물......이런 것들을 억지로 기억해봐도 별 신통찮은 느낌이다.
 내가 나의 남편이나 다른 사람들을 좋아하고, 고마워하고, 저절로 기억할 만한 좋은 부분들은 그런 일들이 아니다. 나는 내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스스로도 힘들어하면서 나를 도와준 사람들을 별로 기억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힘들어할 때 스스로 즐거워하면서 나와 어울려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준 사람들만 기억한다.

 나는 어릴 때도 많이 싸웠다. 지금도 기억나는 일은, 무슨 이유로 그렇게 싸웠는지는 모르겠는데 며칠을 두고 싸운 일이 있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일 때인가, 나는 노는 시간에 싸우고 점심시간에 싸우고, 그리고 방과 후에도 똑같은 아이와 싸움을 계속했다. 그다음 날 등교해서 그 아이와 또 싸우고 또 그다음 날도 같은 아이와 싸웠다. 팔을 강하게 내두르면서 걸상을 던지기도 하면서, 교실에서 복도에서 운동장에서 계속 한 아이와 싸웠다.
 어릴 때도 이렇게 잘 싸웠기 때문에 우리 어머니는 늘 내 걱정을 하셨다. 내가 학교에 가서 친구도 없이 외톨이가 될까봐 걱정하셨고, 커서는 누구도 나와 함께 평생을 살아낼 사람이 없을 거라고 걱정하셨다. 나는 아버지하고도 싸웠고, 선생님하고도 싸웠다. 나는 그들을 화나게 만들었고 그들이 평소 위엄과 권위 있는 몸가짐을 흩뜨린 채 내게 욕지거리를 하고 무엇인가를 던지곤 하면 내가 느낀 경멸스러운 점들을 낱낱이 말로 풀어내고 그들과 똑같이 무엇을 던졌다.

 우연히 구약성서를 읽다가 야곱의 이야기를 읽었다. 야곱이 천사와 싸웠다. 천사가 야곱을 축복하기 전에는 천사를 하늘나라로 되돌려 보내지 않겠다고 소리 지르면서 야곱이 싸웠다. 마침내 야곱이 이겼다. 천사가 야곱을 축복했다. 결국 하느님도 야곱을 축복했다. 
 야곱은 천사도 붙잡아 싸워서 이기는데 내가 나와 같은 사람과 싸워서 그가 나를 축복하도록 만들지 못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천사와 싸우는 야곱을 통해 무한한 가능성을 인간에게서 느꼈다. 인간의 운명도 싸워서 다시 만들 수 있다고 느꼈다.

 우리나라에는 아주 좋은 자선의 풍습이 있다. 마을에 과부가 아이 여럿을 기르면서 산다. 당연히 가난하다. 주변 사람들이 가난을 거의 동시에 느낀다. 그럴 때 그 과부를 돕는 방법은 이 세상에서 우리나라가 제일 멋있다. 한밤중에 쌀자루를 몰래 과부네 담 안으로 놓고 도망치는 것이다. 영원히 그 쌀을 준 사람을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냥 하늘에 감사하면서 산다. 그 마을 누구도 그런 사실이 있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그냥 세월은 흐르고 과부네 아이들은 자라나고 어른이 된다. 그 아이들은 자라나고 어른이 된다. 그 아이들은 세상에 고마워하면서 진중한 인간으로 자라난다. 그렇게 큰 어른은 다시 누군가에게 밤중에 쌀자루를 준다. 이렇게 해서 그 마을은 굶어죽는 사람이 없는 좋은 마을로 영원히 번성한다.
 자선은 이렇게 고통을 함께 느끼는 데서 출발한다. 이 세상 어딘가에 추취와 굶주림에 떠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괴로워할 줄 아는 사람이 자선을 베푼다. 그들의 고통으로 인해서, 홀로 눈물 흘릴 줄 아는 사람만이 자선에 기꺼이 참여한다.

 덮어두기, 안 캐묻기, 모른 체하기, 안 쳐다보기

 박 선생님과는 여러 번 여행에 대해 얘기도 했고 권유도 있었지만 나는 여행을 가지 않았다. 나는 어디든 떠나는 걸 무서워한다. 그러면 박 선생님은 나를 '추장'이라고 놀리면서 웃는다. 좋은 비유다. 아주 작은 인디언 마을 추장. 추장은 절대로 여행하지 않는다.

 "젤 꼭대기 단추까지 애를 쓰면서 끼우시더라고요."
 나는 그 말을 듣고 생각했다. 단정하고 완벽에 관한 욕구가 있는 사람이다.

 그래도 부인은 지친 모습으로 어떤 때는 넋 잃고 창가에 앉아 있기도 하면서 집안일을 다 꾸려가고 있었다. 요즘 누구네를 가나 흔히 마주치는 사람들이 파출부인데. 나는 이런 모습에서 부인의 애정을 읽는다. 철학을 읽는다. 내 손으로 나편을 일으키고 말겠다는 의지를 읽는다. 이 세상의 그 누구인들 나보다 더 정성껏 저 사람을 돌볼 수 없다는 신념이 정원 구석구석까지 차 있다.

 아프가니스탄, 가뭄과 전쟁으로 초토화된 회색빛 먼지 발판을 두 아이가 걷는다. 손을 잡고 걷는다. 아무런 문명의 잔재가 남아 있지 않다. 들판에 듬성듬성 풀이 자라고 그걸 뜯는 양 떼조차 없다. 양이 먹을 만큼의 양도 되지 않게 자라는 풀들을 그 어린이들이 먹는다.
 어린 여자아이는 입주변이 초록색이다. 풀물이 들어서 그렇다. 조금 큰 오빠는 그조차도 없다. 풀조차도 동생을 먹이느라고 조금 덜 먹었나 보다. 여자아이는 여섯 살쯤이고 오빠라는 소년은 한 열 살 돼 보인다. 전쟁으로 고아가 되어 벌판을 떠돌고 있다. 그래도 슬퍼하진 않는다.
 몇년이 흘렀는대도 TV에서 본 다큐멘터리가 생생히 기억난다. 그 소년의 절박한 얼굴과 그 동생의 편안한 태평이...... 그들은 그래서 거기서 버티고 사는 것이다. 극한 상황에서도 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한다. 그 의존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다른 한 사람에게는 바로 그 의존이 생명을 버티게 해주는 철심이 되어 강한 인간으로 변신한다. 모성이 그렇다. 전혀 무방비의 생명체가 그냥 놔두면 죽어버리는 생명체가 주어지면, 그 완벽한 의존이 주어지면 인간은 거의 신이 된 듯이 변화한다.

 암은 병균이 감염된 게 아니다. 내 몸속에서 스스로 돋아난 종유석이다. 피곤할 때 풀지 않은 피로가 쌓은 석회석이고, 굶고 또 굶으면서 손상된 내 내장 속에 천천히 새겨진 암벽화다. 수십 년에 걸쳐서 몸의 소리를 무시한, 야망과 과욕, 인문주의적인 편식에서 나온 독들이 저절로 만들어낸 퇴적층이다.

 눈앞에서 비밀을 다 펼쳐 보여줘도 모르던 과거가 너무 생뚱맞아 보였다. 아무것소 감추지 않는다. 다 드러내서 나열해놨는데도 인간들이 못 느끼고 못 볼 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문제와 답이 다 쓰인 칠판 앞에서 무엇이 문제고 무엇이 답인지를 모르는 멍청이일 뿐이구나.

 그는 별 볼일 없는 화가다. 그래도 나는 그의 그림도 시도 좋아한다. 너무나 개인적이어서 마치 덜 떨어진 나의 친구가 나에게만 보여주는 시 같고 그림 같아서 좋다.

 현실을 핑계대면서 비굴해지려는 인간들. 그 무엇이 우리를 장엄치 못하게 하는가.

 갑자기 맞은 편에서 무언가가 오고 있었다.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공굴리기 할 때 여럿이서 굴리고 뛰어가던 공만큼 커다란 풀덩이가 나를 향해 굴러오고 있었다. 시각으로 형태에 대한 정의가 내려지기 전의 순간적인 놀라움, 알 수 없는 불안, 그런 정리되지 않은 정신의 혼란상태(후략).

 아들이 기억하는 나의 모든 순간이 유언장이 될 것이다.
그의 장점을 혹시 그가 잊을까봐 늘 깨우쳐주려고 노력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항상 그를 칭찬할 거리를 만들고 찾았다.

마타 Matta, 데이비드 호크니, 로세티<장미와 나이팅게일>, 프라다 칼로

'Les Lives, Books'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머리 사용법, 정철  (0) 2009.11.20
앨리스의 생활 방식, 장은진  (2) 2009.10.28
점선뎐, 김점선  (0) 2009.10.26
내가 가장 예뻤을 때, 공선옥  (0) 2009.09.30
검은 설탕이 녹는 동안, 전경린  (0) 2009.09.25
밤의 피크닉, 온다 리쿠  (1) 2009.05.31
Trackback 0 And Comment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