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s Lives, Books'에 해당되는 글 9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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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09.05.31

[본문 조각 스크랩]

 나는 박쥐들이 하늘에서 파드닥 파드닥 오르내리는 것을 지켜보았다. 가벼운 몸짓. 박쥐의 세계는 반사와 굴절의 세계, 표면과 고체와 끝없는 대화를 나누는 세계였다. 그것은 내가 견딜 수 없는 삶이였다. 박쥐들은 절대로 '여기'를 모른다. '저기'로부터의 메아리를 알 뿐.

 여러 면에서 나는 아직 어린아이였다. 그 점은 누구보다도 나 자신이 먼저 인정할 수 있다. 나는 여전히 밤에 가끔 오줌을 써며, 오트밀 죽을 이상하게 겁냈다. 그러나 도해를 그릴 때면 어린아이가 가질 수 있는 불확실한 생각을 지울 수 있었다. '여기'와 '저기' 사이의 거리를 재는 일이란 그 사이에 놓인 미지의 것을 없애는 것이다. 나는 실증 자료가 부족한 어린아이였기에 '여기'와 '저기' 사이에 미지의 무엇이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무서웠다. 다른 많은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저기'에 가본 적이 없었다. '여기'에 있은 적도 거의 없었다.

 제도사가 가장 우선으로 지켜야 할 규칙이 있다. 관찰할 수 없다면, 종이에 기록하지도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옛 선구자들은 바로 다음 산 넘어에 펼쳐진 땅을 상상해 잘못된 지형을 그렸다. 규칙을 마구 위반한 것이다.루이스와 클라크, 조지 워싱턴까지 그랬는데, 아마도 그 사람들은 불확실성이 아주 많은 시대에 태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지도의 여백에 욕망과 두려움을 그리고 싶은 유혹은 얼마나 강렬한가. '용이 사는 곳'. 엣날 제도사들은 선이 닿는 곳 바로 너머의 빈 심연에 그렇게 적었다.

 그렇지만 엠마의 삶에는 근본적으로 종교에 대한 물음표가 달려있었다. 이와는 반대로, 엔즐토피가 필기체로 빽빽하게 쓴 관찰일지에는 엄격함이 있었다. 어느 꽃의 수술 하나를 집어서 그 특성을 서술하는 일은 하나님의 장대한 선언과 너무도 달라 보였다. 레위기 11장 41절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땅에 기어다니는 모든 기는 것은 자등한 즉......'이라고 말했다. 땅에 기는  모는 것이 가증하다니, 어떻게 그렇게 주장할 수 있을까? 무슨 증거로? 관찰 기록은 있나?

 결국 모든 일이 이렇게 되다니 기묘했다. 엘리자베스는 바다를 떠났지만 얻은 것은 이것, 서부의 드넓고 거친 풍경이 아닌, 경사가 완만하고 겉흙이 부드럽고 작물도 빨리 자라는 뉴잉글랜드의 농장이었다. 타협이었다. 두 번째 결혼으로, 엘리자베스의 깊은 곳 어디가 딱딱해졌다. 어느 때보다 행복하기는 했다. 그러나 자신의 운명으로 정해진 일을 놓쳤다는 기분은 떨칠 수 없었다. 

 "밖은 어때?" 남자는 음모를 꾸미는 분위기를 살짝 풍기며 물었다.
 "안 좋아요. 어른들은 가끔 괴상해요." 그 말로, 나는 그 남자를 '어른의 범주'에서 빼는 모험을 하는 한편, 그럼으로써 '비(非)어른'이라는 나의 동지로 만들었다. 나는 그 남자가 실제로 어른이든 아니든 스스로 '비어른'의 범주에 속하고자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지"
 남자의 대답에, 나는 우리가 동지라는 생각을 더 굳혔다.

 §노트 G101의 '무엇을 떠올리게 하지만 꼭 꼬집을 수 없는 냄새들'
 그 자체로 하나의 단일한 냄새가 있는지, 아니면 모든 냄새는 더 작은 부분으로 쪼갤 수 있는지, 나는 아직도 모르겠다. 인간의 감각 중에서 후각이 가장 까다로운 것 같다. 후각에는 딱 맞는 언어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은 냄새를 이야기할 때마다 맛이나 기억이나 은유를 써서 언급한다. 어머니의 토스터가 폭발했을 때, 아버지는 주방으로 와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제4연옥에 들어온 것 같은 냄새군. 여보, 연옥 현틀에서 잠자고 있었어?"
 레이튼은 위층에서 소리쳤다. "와, 불붙은 방귀 냄새 같아!"
 누나는 '변기 커버 노트북'에서 고개를 들고 말했다. "어린 시절에 맡던 냄새네." 누나의 말도 옳았다.

 "고마워요. 이제 가야 할 것 같아요. 안 그러면 여기서 뭘 했는지 설명해야 할지도 몰라요."

 "화장실에 있었어요."  눈물이 솟았다. 아직은 집센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집센의 말투가 누그러졌다. "미안하다. 다그치려는 건 아니었는데....... 이 행사를 잘 치르고 싶어서 그랬어."
 집센이 미소를 지었지만 눈에는 여전히 화가 가득했다. 언제라도 수면 위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집센의 눈을 보며 갑자기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어른들의 감정은 아주 오래, 사건이 끝나고 나서도 아주 오래, 카드를 보내고 사과를 하고 다른 사람들이 모두 이사하고 나서도 아주 오래, 오랫동안 그대로 간직할 수 있다고. 어른들은 낡고 쓸모없는 감정의 꾸러미였다.

 그는 계속되는 박수에 쑥쓰러운 듯,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나도 박수를 보냈다. 모두가 박수를 계속 치면서도 아무도 그 이유를 모르는 듯 했지만, 어쨌든 기분은 좋았다. 친분이 있든 없든 존경을 표시할 만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에게 존경을 표시하는 일은 기분 좋은 일이니까.

 페라로 박사는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임에 틀림없었다. '진짜배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성인 여성과 커피
 나는 페라로 박사가 우리 어머니와 잘 어울릴 수 있을지, 두 사람의 관계를 유지할 만한 지적인 존중을 서로 품을 수 있을지 궁금했다. 나는 어머니에게 친구가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 어머니에게는 커피를 함께 마시고, 미토콘드리아의 예민한 속성을 두고 함꼐 웃고, 동료의 논문에 숨은 정치적인 아부를 놓고 비판할 여자 동료가 필요했다. 어머니는 페라로 박사에게 남편의 말 없는 성격을 털어놓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 성인 여성들이 문을 닫고 방 안에서 하는 일이라면 뭐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페라로 박사는 우리 어머니가 과학자로서 아무 발전을 이룰 생각이 없다는 사실을 알면 눈썹을 찌푸리지 않을까? 페라로 박사는 커피 머그잔을 내려놓고 공허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이 한물간 과학자에게서 벗어나기만을 기다릴지도 모른다. 그 뒤로는 어머니의 전화도 안 받을지 모른다. 어쩌면 어머니는 벌써 이렇게 동료들에게 버려졌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학자들이 벌써 머그잔을 내려놓고 우리 어머니를 한물간 사람으로 취급했는지도 모른다.

 "아, 그럼, 그럼, 그렇고 말고!" 선디가 환호하고 아주 이상한 춤을 추기 시작했다. 훌라후프를 돌리는 듯이 느릿느릿 엉덩이를 빙빙 돌렸다. 곧 다른 사람들도 끼더니, 모두가 이 느린 훌라후프 춤을 추며, 내 앞으로 다가와서, 내가 모르는 무엇을 안다는 듯 머리를 앞뒤로 흔들었다.
 §노트 G101의 '춤추는 성인 남자'
 성인 남자가 이렇게 춤추는 모습을 보니 즐거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불편하고 부끄럽기도 했다. 화장실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초등학교 2학년생 꼬마가 천진난만하게 코를 파는 모습을 보았을 때와 비슷했다.

 마주치는 사람은 누구나 출입증을 목에 걸고 메모판을 들었다. 출입증 목걸이와 메모판이 정말 많았다. 앞뒤로 종종걸음치는 사람이 정말 많았다. 모두 불행해 보였다. 큰 비탄이 아니라, 약한 경멸에 점차 익숙해진 표정에 가까웠다. 어머니가 일요일에 예배를 볼 때 자주 짓던 표정과 비슷했다.

 다리 없는 군인이 악수를 청하며 인사했다. "안녕, 나는 빈스라고 해."
 나는 악수를 하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티에스에요."
(중략)
 나는 용기를 내서, 사지가 절단되고 나서도 마치 남아있는 듯 느끼는 증상에 대해, 아직도 다리가 있는 듯 느껴지는지 물었다.
 "있잖아, 좀 재밌기도 해. 오른쪽 다리는 사라진 걸 알아. 없는 걸 확실히 느낄 수 있어. 몸이 확실히 느끼고 있어. 그렇지만 왼쪽 다리는 살아나. 다리가 하나뿐이 기분이 들어서 내려다보면 이런 생각이 들어. '아니, 젠장, 그 하나도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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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처 받을까 하는 두려움은 잠시 미뤄두자. 예방주사도 자국이 남는데 하물며 진심을 다하는 사랑이야 어떻게 되겠니.

 우리는 우리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정복하려고 그들을 추적하기에 이른다. 이것이 자아 존중감을 증가시키는데 도움이 되리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고마운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살기에도 짧은 세상에 말이야.

 너무 옳아서 잔인한 말씀

 당신은 진정 성장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진정 깨어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진정 행복하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원하는 것은 안도하는 것입니다. 치유란 늘 고통스러운 것이니까요. 그것은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니까요.
 당신은 아무도 사랑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 사람에 대한 편견과 기대라는 관념을 사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신은 결코 누구도 신뢰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로지 그 사람에 대한 자신의 판단을 신뢰할 따름입니다.
 결국 이렇습니다. 사람들은 성장하기를 진실로 원하지 않습니다. 달라지기를 진실로 원하지 않습니다. 행복하기를 진실로 원하지 않습니다. 어떤 분이 말하더군요.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려고 하지 마세요. 골치만 아프게 될 테니까요.'

 엄마는 충분히 불행했음에도 변화하기가 두려웠단다. 왜냐하면 고통보다 더 두려운 것은 미지이기 때문이지. 설사 여기서 괴로움이 있다 해도 그것이 내가 아는 것이라면 그게 더 나았던 거야.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대로 내 삶을 사는 것, 그건 이기적인 것이 아닙니다.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대로 남에게 살도록 요구하는 것, 그것이 이기적인 것입니다. 이기심은 남들이 나의 취향, 나의 자존심, 나의 이득, 나의 기쁨에 맞추어 살도록 요구하는 데 있습니다. 부인은 내가 나의 행복을 희생하여 당신을 사랑하기를 원하시겠습니까? 부인은 부인의 행복을 희생하여 나를 사랑하고 나는 나의 행복을 희생하여 당신을 사랑하겠고, 그래서 불행한 사람 둘이 생겨나겠지만, 사랑 만세!

우리는 나이 들수록 의문을 품지 않고 질문을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자신이 배운 삶의 가치를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그렇게 되면 어느 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지는 것이 된다. 절대적이고 당연한 가치들이 존재하는 곳에서 능동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네가 온전히 너의 삶은 살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선 너와 네가 사는 세상을 낯선 시선으로 볼 필요가 있다. 좀 더 객관적인 눈으로 인생을 멋지게 설계하기 위해서 말이다.

 엠마오로 가는 길이란, 예수가 죽은 후 그의 제자 둘이서 엠마오로 가는 길에 어떤 훌륭한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그 길을 말하는 거야. 근데 그 어떤 사람이 바로 자신들이 죽었다고 슬퍼하고 있는 바로 그 예수였어. 그들은 예수의 죽음으로 몹시 실망하고 있어서 부활한 예수가 함께 걸어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었던 거지.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그 스승이 죽어서 부활한다는 사실보다 어쩌면 그 스승의 죽음으로 인해 상심하고 있는 자신들의 마음이 더 중요했을지도 모르니까.

 고통 당하는 사람은 자신의 고통을 자신과 동일시하기 때문에 고통과 작별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왜냐하면 고통은 그가 알고 있는 것이지만, 그 고통을 놓아버린 후에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그가 모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늘 우리를 비난하는 사람들을 배심원 석에 앉혀놓고, 피고석에 앉아 우리의 행위를 변명하고자 하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다.

 당신이 당신을 재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는 그 잣대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주여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 하게 해주시고,
 내가 할 수 없는 일은 체념할 줄 아는 용기를 주시며,
 이 둘을 구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

 세 사람이 있는데, 가장 힘센 자가 가장 힘없는 자를 착취하려 할 때 나머지 한 사람이 '네가 나를 죽이지 않고서는 이 힘없는 자를 아프게 하지 못 할 것이다'라고 말할 때 천국은 이미 이곳에 있다.

 미움을 표현하기 위해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 외에는 그 방법을 모르는 우리 상처받은 인간들

 고난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온다. 아니 어쩌면 불공평하게 오지. 착하게 사는 사람에게나 나쁘게 사는 사람에게나 공평하게 닥치니까.

 내가 나 아니기를 바라던 동경이 얼마나 큰 형벌인지

 내가 나 자신이 아니기를 동경하여 시기심으로 눈이 멀어버린 듯한 그런 친구

 사람은 자신의 불행을 함께 한탄하는 것을 다릉 사람을 위로한다고 착각할 때가 많아. 진정한 우정은 그의 성취에 그의 성공에 함께 진심으로 기뻐해 줄 수 있는가 아닌가에 있고, 이런 일은 대개는 '스스로가 스스로임을 좋아하고 행복한', 스스로와 스스로의 삶에 긍정의 눈을 뜨고 있는 사람들만이 해낼 수 있는 일이더구나.

 우리의 동경이 현세에서 이루어지지 않아도,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우리를 우리가 바라는 대로 사랑하지 않아도, 우리를 배반하고 신의 없게 굴어도, 삶은 어느 날 그것이 그래야만 했던 이유를 가만히 들려주게 될 거라고, 그날 너는 길을 걷다가 문득 가벼이 발걸음을 멈추고, 아하, 하고 작은 미소를 지을 수도 있다고. 그러니 두려워 말고 새로이 맑은 오늘을 시작하는 것이라고 말이야.

 우리는 언제나 열렬히 사랑하기에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서둘러 사랑하려고 하기 때문에 문제를 일으키는 거야.

 연애에는 성공할 수 있는 전략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랑에는 실패하는 일이야. 네 목표가 연애를 잘 하는 것이라면 그런 책들이 유용하겠지만 네 꿈이 누군가와 진정으로 사랑하는 일이라면 그건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아.

 진정한 자존심은 자신에게 진실한 거야. 신기하게도 진심을 다한 사랑은 상처받지 않아. 후회는 언제나 상대방이 아니라 자신을 속인 사람의 몫이란다.

 더 많이 사랑할까봐 두려워하지 말아라.

 누군가가 자신의 엄격한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했을 때, 자신의 비현실적 기대를 탓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 상해서 상대를 지목하고 그를 독선적으로 비난한다.

 가끔 사람들은 말하지. '인생에서 상처 받은 사람등이 한 둘이야?' 엄마는 이런 어법을 아주 싫어한다. 암으로 죽어가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너의 후두염이 경시 받아도 된다는 뜻은 아니니까. 인생은 고통 콘테스트가 아니잖아.

 어느 해질 무렵 수녀님들은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는다. 나가보니 헐벗은 나환자가 추위에 떨고 있었다. 마더 테레사는 즉시 음식과 담요를 내 주었다. 그런데 그 가난한 나환자가 진지하게 말했다.
 "수녀님 오늘 제가 여기 온 것은 뭔가 얻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수녀님이 어디선가 큰 상을 받았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오늘 제가 구걸해서 번 돈을 선물로 드리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수녀님 비록 약소하지만 제 선물을 받아주십시오."
 참고 참았는데 이 헐벗은 나환자가 결국 엄마를 울리고 말았지. 정말 그럴 수 있을까? 이 이야기는 정말일까? 그래, 하지만 우리는 안다. 그럴 수 있다는 걸.

 위녕, 가을이 익어가고 있다. 어제는 태풍이 대한해협을 통과했다지. 태풍은 열대의 뜨거움을 강제적으로 온대지방으로 전달해 내는 자연의 방식이라는데, 고여 터질 것 같은 열대의 정열이 온대지방으로 오면 거의 폭력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엄마는 오래 전에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본 일이 있어. 마음 속의 압력들을, 사소한 분노들을, 실망감과 상처들을, 어쩌면 뜨거운 사랑까지도, 조금씩 처리하는 법을 익히지 않으면 그렇게 내 마음의 뜨거움들도 다른 이들에게 가서 폭력으로 변하지 않을까 함께 겁이 났었지.

 엠마뉘엘 수녀님은 소르본에 진학하는 기회를 놓치고 자신의 노트와 책을 불살라 버린 후 빈민가로 들어간다. 그녀는 어느 날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생을 마친 후 신 앞에 섰을 때 신이 그녀에게 소르본을 나왔는지 아닌지 묻지 않을 거라는 것을 말이야.

 왕의 기분을 전환시켜 자기 생각을 못하게 하려는 생각밖에 없는 사람들로 왕은 둘러싸여 있다. 아무리 왕이라도 자기 생각을 하게 되면 불행해지니까.

 창작이 다른 직업이 지니는 기본적인 고통과 다른 근본적이고 특이한 고통을 지닌 듯 폼 잡으며, 그것은 밥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듯, 글을 쓴다는 것이 무슨 하늘이 내린 형벌인 듯 포즈를 취하는 사람들.

 세계 명작 동화에 사람이 저지를 수 있는 온갖 종류의 잔인과 범죄가 나오는 걸 보면 사실은 우리의 바람과는 달리 그저 사실인 거야.

 사막을 횡단하는 것은 단숨에 되지 않는다. 사막을 횡단하려면 작은 걸음들이 수백만 번 필요하다. 그리고 한걸음 한걸음이 길의 한부분이 되고 경험의 일부가 된다. 모든 탐험이 매번 진짜 삶이었다. 고비 사막의 횡단은 성공적이었다. 물론 고비 사막을 횡단 했다고 해서 내가 현명해 진 것도 아니고 녹초가 된 것도 아니다. 늙어보이게 되었을 뿐이다.

 위녕, 이 다음에 너는 이 시간들을 어떻게 기억할까, 하는 생각해본 적 있니? 엄마는 가끔 생각해. 시간이 많이 흐른 후, 지금 믿고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이 하나도 중요해지지 않을 때가 있다면 그때 나는 지금을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그때 내가 내 앞에 주어진 생을 어떻게 대하고 있었던가 하는 거 말이지.

 아마 2001년이라고 기억되는데 봄철에 아주 심한 가뭄이 들었다. 논들이 바싹바싹 타들어가고 온 나라에 심어놓은 모들이 말라죽을 위기에 처했었지. 양수기가 동이 나고 농부들은 온 힘을 다해 논들에 물을 대었단다. 대단한 가뭄이었어. 그리고 그해 가을이 되었어. 해마다 초가을이면 찾아오는 태풍 중에서 가장 거센 것이 한반도를 덮쳤지. 모두들 가뭄을 겨우 이겨낸 들녘에 다시 바람이 부는 걸 보니 이번 해 농사는 망쳤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결과는 생각과는 아주 딴판이었어. 그토록 거센 태풍은 놀랍게도 벼 이삭들을 거의 쓰러뜨리지 못했어. 심지어 그해 가을에는 사상 유래가 없는 풍년이 들었단다. 전문가들이 무심히 이야기하더구나. 이 심한 태풍에도 피해가 거의 없었던 것은 봄날의 가뭄 때문이었다고. 그러니까 봄날에 벼들이 막 땅에 제 뿌리를 묻었을 때 부족했던 물 때문에 깊이 뿌리를 내려야 했고, 그래서 거센 태풍에도 불구하고 벼들은 쓰러지지 않았다고 말이야.
 변명하는 말이 진정 아니기를 바라지만, 젊은 날의 고통은 얼마나 가치 있고 귀중한 것인지 엄마는 알게 되었단다. 왜 젊은 시절의 고생은 사서라도 하라는 말이 있는지도 알게 되었단다. 그건 그냥 방황하는 젊은이들을 위로하는 상투어가 절대로  아니었다는 것을. 젊은 시절은 삶의 뿌리를 내리는 계절. 무사태평하게 그 시절들을 보내다가 이미 모든 것이 무겁게 익어버린 가을날에 태풍이 덮치면 그건 정말 어려운 일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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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 개의 단어가 있습니다. 이중 나머지 단어와 관련 없는 단어 하나를 찾아보세요. 치과, 이빨, 스케일링, 충치, 치약, 서울역, 칫솔, 사랑니, 틀니. 이상입니다. 어려운가요? 어렵지는 않지만 왠지 당신이 생각한 답이 정답은 아닐 것 같은가요? 그게 정답이라면 이런 문제를 냈을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드시나요?
 정답은 서울역입니다. 당신이 생각한 답과 같은 서울역입니다. 세상 모든 문제는 답을 몰라서 못 푸는 게 아니라, 자신 없어 하거나 주저하다가 못 푸는 것이지요. 지금 당신이 안고 있는 크고 작은 문제들, 당신이 알고 있는 답 그대로 행동하시면 다 풀 수 있습니다. 돌아가거나 비켜가려 하지만 않는다면.

 외로운 것보다 더 외로운 것은 외로움을 들키는 것이다.

 고래를 사랑하니?
 사랑해. 너무너무 사랑해. 하지만 난 수영을 못 해. 고래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없어. 절망이야.
 바닷물을 다 마셨어야지. 사랑한다면.

 바다는 갈매기가 자신에게 하루에도 수백 번씩 키스를 한다고 믿는다. 키스의 황홀함에 취해 물고기를 도둑맞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다.

 문제를 미리 가르쳐주는 시험
 죽어서 하늘나라에 가면 하느님이 뭐라고 묻는지 아십니까.
 후회 없이 살았는가?
 문제를 알았으니 지금부터라도 모범답안을 만들어 보십시오.

 우산을 들면 손 하나가 사라진다. 우산을 들지 않은 손으로 가방도 들어야 하고, 뒷주머니에거 지갑도 꺼내야 하고, 길을 묻는 사람에게 길도 가르쳐주어야 한다.
 하지만 우산을 던져버리면, 자유롭던 나머지 손 하나까지 사라지다. 두 손을 모두 비를 막는 데 써야 한다. 느긋하던 두 발까지 분주하게 움직여야 한다.
 인생에서 만나는 크고 작은 불편들이 어쩌면 우리를 자유롭게 해 주는지도 모른다.

 용돈에는 두 종류가 있다. 주는 것과 드리는 것.
 주는 것은 갈수록 늘어나고, 드리는 것은 갈수록 줄어든다.
 지갑 속에 인생이 있다.

 아들이 엄마의 등을 밀어줄 만큼 자라면 더 이상 여탕에 데려갈 수 없습니다.
 아들의 손을 너무 꽉 쥐지 마세요.

 당신은 9회 말 투아웃에 역전홈런을 꿈꾼다. 그래서 9회가 오기 전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그래야 9회 말에 모든 힘을 집중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래야 9회 말이 더 짜릿하고 통쾌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말이다. 야구도 인생도 7회 콜드게임으로 끝날 수 있거든. 지금 서 있는 타석에서 최선을 다해보는 게 어때?

 달과 별 중에 누가 더 외로울까. 힌트는 별은 무수히 많은데 달은 혼자라는 것.
 그래, 별이 더 외롭지. 무수히 많은 속에서 혼자인 게 훨씬 더 외롭지. 당신처럼. 나처럼.

 와인 코르크 마개를 뽑아내는 법
 대고, 긋고, 벗기고, 대고, 뚫고, 돌리고, 돌리고, 걸치고, 올리고, 다시 걸치고, 다시 올리고, 뽑고. 와인을 마신지 5년 만에 코르크 마개 뽑아내는 법을 제대로 배웠다. 열두 단계였다. 애써 힘을 줄 필요도 없이 물 흐르듯 열두 단계를 거치면, 코르크 마개는 성문을 열고 투항하는 병사처럼 병 밖으로 비실비실 기어 나온다.
 그렇다면 지난 5년은? 성문을 제대로 열 줄도 모르면서 어떻게 와인을 마셨을까? 그냥 뽑고, 마시고. 그래, 그냥 뽑고 마셨다. 그걸로 큰 불편이 없었다. 아니, 충분했다. 이젠 와인을 만나면 실수 없이 코르크 마개를 뽑아내야한다는 생각부터 든다. 와인 마실 자격이 있다는 것을 코르크 마개 뽑아내는 솜씨로 보여주려 한다.
 혹, 우리는 배우지 않아도 되는 것들을 너무 많이 배우며 사는 것은 아닐까?

 동태에게 명태 시절의 기억을 물으면 한 마디도 대답을 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동태의 머리를 툭툭 치며 한심하다고 야단치지 마라. 기억을 되살려준다며 동해로 질질 끌고 가지도 마라.
 동태는 기억이 안 나서 대답을 못하는 게 아니라 입이 얼어서 대답을 못하는 거니까. 말 없는 사람을 만나면 혹시 내가 그의 입을 얼게 하지 않았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야구계에 죄송한 말씀
 야구계에서는 비가 내려도 경기를 할 수 있는 돔 구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잔디계에서는 스파이크로 잔디를 찢어놓는 것도 모자라 이젠 비마저 앗아가려고 하느냐는 반발이 나오고 있다. 비계에서도 우리를 똥물 취급한다며 항의가 빗발치고 있다. 햇살계에서도 공짜로 주는 햇살을 마다하는 멍청한 짓이라며 혀를 차고 있다.
 야구계의 주장은 야구계 일부의 의견일 뿐이다. '들에서 하는 운동'이라는 이름을 바꾸지 않을 거라면, 잔디와 비와 햇살도 야구계 소속이니까.

 욕심 많은 타잔 이야기
 타잔은 정글 속에서 선악과를 발견했고 이를 원숭이 몰래 혼자 먹어치운 것이 분명해. 그게 아니라면 혼자만 팬티라는 문명을 두르고 있는 이유를 설명할 수가 없어.
 그리고 혼자 먹어치운 그 선악과 때문에 동물들에게 집단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게 분명해. 그게 아니라면 동물의 왕국에 한 번도 등장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할 수가 없어.
 문제는 따돌림을 견디지 못한 타잔이 정글을 탈출했다는 거야. 그게 아니라면 뭐든 혼자 먹어치우려는 사람이 우리 주위에 갑자기 늘어난 이유를 설명할 수가 없어.

 화분
 식물의 감옥. 그것도 독방. 그리고 종신형. 당신이 돕지 않으면 탈옥은 불가능.

 약속
 새끼손가락의 유일한 기능. 그러나 지키지 않으면 새끼손가락의 기능은 마비되고, 새끼손가락의 기능마비는 결국 손가락 주인의 전신마비로 이어지고 만다.

 게으름
 느림이라는 말과 가장 헷갈리는 말. 느림이 천천히 달리는 자동차라면 게으름은 고장 나 서 있는 자동차. 즉, 게으름은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 정신상태의 문제.

 상상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힘. 현실을 무시한다는 점에서 공상이나 망상과 비슷해 보이지만 상상은 그들에 비해 현실을 바꾸는 힘이 훨씬 세다. 그래서 상상력이라는 말은 있고 공상력이나 망상력이라는 말은 없다.

 시험
 쪽지시험, 수능시험, 입사시험, 면허시험, 승진시험....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끝도 없이 반복되는 인생의 생존 게임. 그 모든 시험 중에서 가장 중요한 시험은 다음 시험. 지나간 시험에 미련을 갖는 건 미련한 짓이다.

 나이
 사람의 먹을거리 중에서 가장 먹기 까다로운 메뉴. 먹기 싫어도 먹어야 하고, 한 번 먹으면 뱉을 수도 없고, 한꺼번에 여럿 먹을 수도 없고, 죽을 때까지 꾸준히 먹어야 하고, 너무 많이 먹으면 죽는다. 그러나 이 까다로운 나이를 먹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 먹은 만큼 값을 하는 것.

 사람
 무인도에 데려다 놓으면 일주일도 못 버티는 연약한 동물. 그러면서도 무인도에서 살아남는 법이라는 책을 쓰는 참 재미있는 동물. 약하면서 늘 강한 척.

 결혼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하는 게 아니라, 가장 오래 사랑할 사람과 하는 것. 즉, 결혼은 사랑의 완성이 아니라 사랑의 시작.

 얼굴
 편지 겉봉에 붙은 우표. 예쁘다는 이유로 잠깐 눈길을 끌 수는 있지만,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은 늘 편지 속에 눌러 담은 마음.

 컴퓨터
 사람보다 빠르고, 사람보다 똑똑하고, 사람보다 정직하고, 사람보다 충직하고, 사람보다 재미있고, 사람보다 재주가 많은 사람의 친구. 단점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 그래서 마주 볼 수는 있어도 나란히 앉을 수 없다는 것.

 동화
 읽으면 마음이 깨끗해지는 이야기. 읽지 않아도 마음이 깨끗한 어린이들에게 왜 읽으라고 하는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

누군가를 꼭 설득해야 할 일이 있다. 그러나 도무지 설득당할 것 같지 않다. 그래도 설득해 내야 한다. 인내심을 가지고 한 번, 두 번, 세 번...... 열 번을 설득한다. 그래도 꿈쩍하지 않는다. 이제 어떡해야 하나?
 몰라서 묻는가? 열한 번 설득해야지.

 미국으로 유학을 간 친구에게서 편지가 왔다. 힘들다로 시작해서 죽겠다고 끝났다. 나도 힘들고 죽겠으니 다음부터는 좋은 소식만 전하라고 답장을 했다. 며칠 후, 제법 두툼한 편지가 다시 왔다. 편지지 다섯 장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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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Ray Ban outlet 2013.07.20 09:40 address edit & del reply

    당신 매력있어, 자기가 얼마나 매력있는지 모르는게 당신매력이야

  2. ugg boots 2013.07.22 15:42 address edit & del reply

    당신은 내가사랑할 만한 사람이 아니예요,사랑하지 않으면 안될 사람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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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이 먼저 이 세상을 경멸하고 있었다. 증오하고 있었다. 못 견뎌 하고 있었다. 부적응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반응이라고도 부르지 않는다. 경멸이라고 불러야 속이 후련하다.
 그때 나는 다섯 살, 그때는 몰랐지만 그것이 권태였다.
 오래 살아서, 그런 걸 다 알아차렸다고 해서 그 느낌이 엷어지지는 않았다. 고통의 깊이는 변화가 없다.

 그렇게 의미심장한 듯한 경험을 함께 했는데도 아무 관련 없이 멀리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의아하다. 같은 마을에서 태어나 이웃으로 오래 살다가 함께 바다에서 흔들리다가 헤어졌는데 그 후에는 아무 관련 없이 그냥 살아간다. 그러다가 낯선 곳에서 따로따로들 죽어간다.

 언니가 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우리가 자는 방에는 언니 책상과 내 책상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내 책상은 검고 육중한 것이었다. 의자에 앉아서, 서랍이 양쪽으로 기둥처럼 받치고 있는 책상에서 공부하는 나의 모습을 미리 상상하곤 했던 것이다. 나의 검은 책상은 평생토록 만족을 주었다. 아무도 모르는 깊은 만족을 아주 깊게 흘리면서 나는 평생을 살았다.

 아버지는 부두노동을 했다. 미국 배에서 일했다. 아버지가 배에서 스케치북과 크레용을 얻어 왔다. 노동을 쉬는 날에는 우릴 데리고 산으로 갔다. 집 가까운 군청산에 가서 그림을 그렸다. 아버지는 내가 그리는 걸 지켜보고 있었다. 그럴 때 나는 편안하고 의젓해졌다. 상상화를 그렸다. 아버지는 내 그림을 두고 자신의 욕구를 표출했다. 내가 그리는 걸 지켜보면서, 내가 산꼭대기에만 그림을 그리면, 산 중턱에도 꽃을 그리라고 했다. 그러면 나는 순순히 그렇게 했다. '아 그렇구나. 산에는 꽃이 골고루 피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순순히 꽃들을 전면에 가득 채웠다. 아버지가 그러길 원하는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어느 날 환하게 꽃 핀 벚꽃나무 아래서 나 혼자 소꿉장난을 하고 있었다. 뻔한 레퍼토리. 벽돌조각을 주워다가 돌맹이로 부수면서 노는 일, 여러 종류의 가루를 내는 일, 풀을 뜯어다가 음식이라고...... 그럴 때 온화하게 생긴 한 소년이 다가왔다. 잘생긴 외모에 어울리게 아주 성격이 부드러웠다. 게다가 내가 주는 대로 다 먹었다. "이게 식혜야 마셔"하고 내밀면 "아, 맛있다' 하면서 먹는 시늉을 했다. 잘 웃고 거역하지 않았다. 순순히 놀이가 진행되어서 아주 즐거웠다. 그 소년과 놀면서 인생에서 첨으로 식구 아닌 다른 사람과 행복하게 지내는 걸 체험했다. 그러면서 그때 생각했다. 아주 커서도 이런 좋은 사람을, 주는 대로 먹어주는 사람을, 잘 웃고 온화하고 부드러운 인간을 만나면 아주 행복하게 살 수도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양화가 "잠 안 오는 약을 먹고 공부하니까 진짜 잠이 안 오더라" 하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도 그렇게 하라고 했다.
 그날 밤부터 약 먹고 공부했다. 그 후부터 자신을 쫘악 조이면 남을 놀라게 할 만큼 성적이 오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양화로 인해서 자기 자신을 보는 눈을 한 등급 업그레이드한 셈이다.
 이 사건은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 일로 자신을 전혀 밖의 시선으로 볼 줄 모르던 무의식의 아동기가 끝났다. 학교 성적 같은 건 그전까지는 머릿속에 없었다. 그런데 그 사건 이후 명예욕이 싹튼 것이다. 나도 명예로울 수 있고, 사람들이 놀란 경탄의 눈으로 나를 볼 수도 있다는 정신적 풍경을 느끼게 된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자기 자신을 흐뜨리지 않는 어른

 사람이 태어나서 할 수 있는 최초의 일도, 최고의 일도, 최후의 일도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라는 것을 몸소 실천하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그 인형을 그리워한다.

 조금 더 자라서 집에 손님이 오면 아버지는 나를 불러 그들의 모습을 그리게 했다. 내가 몰두해서 그림을 그리고 나면 아버지는 "똑같지! 사진이야!" 하며 나를 칭찬했다. 아버지는 혼자서 나를 칭찬해대는 것도 모자라서 모든 손님들로부터 칭찬을 받아냈다. 그때는 그 말을 무심히 흘려들었다. 귀찮다는 생각도 앴지만 그러한 말들이 나와 다른 사람들과의 차이를 만들었음을 깨달았다.

 태풍이 불었다. 가로수가 뽑혀 넘어졌다. 전봇대도 너어졌다. 비도 많이 왔다. 학교에 갔다. 전교생 중에서 세 명쯤만 학교에 왔다.
 교감 선생님이 말했다.
 "너희들은 아이큐가 발바닥이다."
 고등학교 때 이야기다.
 나는 지금도 생각한다. 우리 세 명은 과연 옥먹어야 마땅한가?

 안데르센 동화.
 내 인생에 영향을 끼친 책 중에는 <백조왕자>가 있다. 역시 불행에 처한 공주 이야기다. 공주는 모함을 받아 궁궐에서 쫓겨난다. 열한 명의 오빠들, 곧 왕자들은 백조가 되어 하늘을 난다. 공주를 괴롭히는 사람들이 마술을 걸어서 왕자들을 백조로 변신시킨 것이다. 공주가 공동묘지에서 자라는 거친 풀로 열한 벌의 옷을 짜면 왕자들이 새의 몸을 버리고 다시 사람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한다. 마술을 푸는 데는 언제나 무서운 조건이 따라붙는다. 옷을 다 만들 때까지 절대로 말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말을 한 마디라도 하면 이제까지의 노력이 물거품으로 돌아가버린다. 백조는 영원히 백조로 남게 된다.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나는 초등학생이었다. 옷을 한 번도 만들어본 적이 없는 어린아이가 혼자서 어떻게 옷을 만드나. 그것도 거친 풀로! 나는 그것을 걱정하였다. 일을 열심히 하면 말을 안 하는 것이 당연하지. 어른들도 일을 열심히 할 때는 말하지 않는다. 우리도 공부할 때는 말하지 않잖아 하면서 그런 조건을 우습게 생각했다. 나같이 평범한 초등학생이 말 안 하는 건 아주 쉬운 일인데 모합받는 사람들한테는 무지 어려운 일이란 걸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사람들이 공동묘지에서 거친 풀을 베어내서 풀 옷을 짜고 있는 공주를 가만 놔둘리가 없었다. 공주는 미친 듯이 열심히 일했다. 손이 거친 풀에 베어서 상처가 나고 거기서 피가 흘러도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풀을 베었다.그리고 그것으로 옷을 짯다. 공주의 아름답던 치장은 다 흐트러지고 머리는 산발이 되고 옷은 찢어지고 더러워졌다. 공주는 일 초라도 다른 데 신경 쓸 수가 없었다. 오로지 오빠들을 구해내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일에 몰두했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왕따 시키다가 차츰 미쳤다고 했을 것이다. 드디어 마녀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을 것이다. 변명하라고 외치기도 했을 것이다. 그 대목에서 말 안 하기가 그렇게 힘들고 안타까운 일이라는 걸 처음으로 깨달았다. 책을 읽는 내 가슴이 고통으로 저며드는 듯했다.
(중략)
 마녀라고 부르면서 변명을 요구하는 군중들을 생각해냈다. 그러면서 그 침묵을 기엇해냈다. 헝클어진 모습으로 미친 듯이 풀옷을 짜는 공주를 생각해냈다. 그러면서 그 침묵을 기었했다. 그리고 그 몰두를 같이 기억해냈다. 그렇다. 말없이 몰두하는 것이다. 말없이 열심히 내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이 그림이 완성되면 세상이 내게 건 마술도 풀릴 것이다. 나는 그런 심정으로 그림을 그렸다.
 변명은 낭비다. 변명은 내가 나아갈 길이 아니다. 오로지 내 속의 나침반만 바라보면서, 내 감성이 이끄는 대로 그림을 그려나가면 길이 열릴 것이다. 내가 할 일은 침묵 속의 몰구, 그것 뿐이다.

 하지만 머릿속을 질서정연하게 정리하는 일은 중요하다 생각하면서 세 번을 읽었다. 그 시절 나는 늘 자신에게 질문하고 명확하게 대답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자신에게 질문하고 명료한 답을 제시해야만 잠이 왔다. 대답이 시원찮으면 다시 얼어나서 참고서적을 뒤적여서, 막히는 부분에 대해 명료하게 답을 만들어내고서야 잠들었다.

 "거, 여자 감방, 조용히 해!"
 그래도 그 여자는 멈추지 않고 춤춘다. 다시 조용히 하라고 소리쳐도 우리는 듣지 않는다. 말 잘 듣는 사람들이었다면 우리가 왜 여길 오냐 하고 나는 속으로 생각하는데, 그 젊은 여자는 아무 생각도 없는 듯 즐겁게 춤춘다.

 석굴암에서 입장료 낼 때, 핵생인데 왜 할인 안 해주냐고 서서 한 10분쯤 떠들고 있었다. 학생 할인이 안 된다고 설명해줘도, 왜 안 되냐며 비분강개하고 있었다. 실컷 화내라 하면서 나는 좀 떨어져 서서 구경하고 있었다. 무슨 증명서를 몇 장이나 꺼내 매표원에게 펴 보이면서 떠들고 또 떠들었다. 돈 한 푼으로 부들부들 떠는 모습이 본받을 점이라고 느꼈다. 가끔 기를 쓰고 푼돈을 깎으려다 결국 실패한, 분기탱전한 그 청년의 모습이 떠오른다.

 결혼은 백마 탄 왕자와 골 빈 여자가 학예회 하듯이 벌이는 연극이 아니다. 결혼은 내 진보적인 친구가 거품 물고 떠들어대듯이 합법적인 매춘도 아니다. 결혼은 망상도 도피도 아니다. 결혼은 완전한 사람으로서 살기 시작하는 일이다.
 나의 전체를 사용해서 책임지고 독립해서 스스로 사는 것이다. 내가 아는 모든 지식을 이용해서 밥 짓고 빨래하고 나 스스로를 위해 내 주변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누군가와 함께, 그것도 꼭 나같이 멍청하고 자신 없고, 쭈뼛거리며 겨우 살고 있는 사람과 모여서 서로를 거울처럼 비춰보며 우리끼리 사는 것이다.
 그렇다, 결혼이란 허영도 망상도 타락도 아니다. 결혼은 건강하고 씩씩하고 힘찬 생활의 시작이다. 뭐든지 스스로 하는, 두 또래끼리 모여서 모든 걸 그들끼리 결정하고 실천하는 모험의 생활이다. 탐구여행이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선택의 기쁨'을 느꼈다. 필통이나 연필, 손수건 같은 걸 직접 내가 골라서 샀다. 진열대 앞에 서서 눈에 맨 먼저 강하게 띄는 걸 샀는데, 그 필통이 다 깨지고 손수건이 해질 때까지도 나는 내 물건에 긍지를 느끼며 사랑했다. 나의 선택이 나를 행복하게 한다는, 자신의 직감에 대한 신뢰감이 그렇게 어릴 때부터 자라나고 있었다.

 나의 남편이 내게 어떤 헌신적인, 소중한 일을 했는가 하고 누가 물어오면 나는 한동안 멍해진다. 억지로 끼워 맞추듯이 몇 가지를 집어내 본다. 진통이 시작되었을 때 깊은 밤에 잠자지 않고 나를 병워에 데려다준 일, 어느 생일날 불쑥 내민 뜻밖의 선물......이런 것들을 억지로 기억해봐도 별 신통찮은 느낌이다.
 내가 나의 남편이나 다른 사람들을 좋아하고, 고마워하고, 저절로 기억할 만한 좋은 부분들은 그런 일들이 아니다. 나는 내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스스로도 힘들어하면서 나를 도와준 사람들을 별로 기억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힘들어할 때 스스로 즐거워하면서 나와 어울려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준 사람들만 기억한다.

 나는 어릴 때도 많이 싸웠다. 지금도 기억나는 일은, 무슨 이유로 그렇게 싸웠는지는 모르겠는데 며칠을 두고 싸운 일이 있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일 때인가, 나는 노는 시간에 싸우고 점심시간에 싸우고, 그리고 방과 후에도 똑같은 아이와 싸움을 계속했다. 그다음 날 등교해서 그 아이와 또 싸우고 또 그다음 날도 같은 아이와 싸웠다. 팔을 강하게 내두르면서 걸상을 던지기도 하면서, 교실에서 복도에서 운동장에서 계속 한 아이와 싸웠다.
 어릴 때도 이렇게 잘 싸웠기 때문에 우리 어머니는 늘 내 걱정을 하셨다. 내가 학교에 가서 친구도 없이 외톨이가 될까봐 걱정하셨고, 커서는 누구도 나와 함께 평생을 살아낼 사람이 없을 거라고 걱정하셨다. 나는 아버지하고도 싸웠고, 선생님하고도 싸웠다. 나는 그들을 화나게 만들었고 그들이 평소 위엄과 권위 있는 몸가짐을 흩뜨린 채 내게 욕지거리를 하고 무엇인가를 던지곤 하면 내가 느낀 경멸스러운 점들을 낱낱이 말로 풀어내고 그들과 똑같이 무엇을 던졌다.

 우연히 구약성서를 읽다가 야곱의 이야기를 읽었다. 야곱이 천사와 싸웠다. 천사가 야곱을 축복하기 전에는 천사를 하늘나라로 되돌려 보내지 않겠다고 소리 지르면서 야곱이 싸웠다. 마침내 야곱이 이겼다. 천사가 야곱을 축복했다. 결국 하느님도 야곱을 축복했다. 
 야곱은 천사도 붙잡아 싸워서 이기는데 내가 나와 같은 사람과 싸워서 그가 나를 축복하도록 만들지 못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천사와 싸우는 야곱을 통해 무한한 가능성을 인간에게서 느꼈다. 인간의 운명도 싸워서 다시 만들 수 있다고 느꼈다.

 우리나라에는 아주 좋은 자선의 풍습이 있다. 마을에 과부가 아이 여럿을 기르면서 산다. 당연히 가난하다. 주변 사람들이 가난을 거의 동시에 느낀다. 그럴 때 그 과부를 돕는 방법은 이 세상에서 우리나라가 제일 멋있다. 한밤중에 쌀자루를 몰래 과부네 담 안으로 놓고 도망치는 것이다. 영원히 그 쌀을 준 사람을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냥 하늘에 감사하면서 산다. 그 마을 누구도 그런 사실이 있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그냥 세월은 흐르고 과부네 아이들은 자라나고 어른이 된다. 그 아이들은 자라나고 어른이 된다. 그 아이들은 세상에 고마워하면서 진중한 인간으로 자라난다. 그렇게 큰 어른은 다시 누군가에게 밤중에 쌀자루를 준다. 이렇게 해서 그 마을은 굶어죽는 사람이 없는 좋은 마을로 영원히 번성한다.
 자선은 이렇게 고통을 함께 느끼는 데서 출발한다. 이 세상 어딘가에 추취와 굶주림에 떠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괴로워할 줄 아는 사람이 자선을 베푼다. 그들의 고통으로 인해서, 홀로 눈물 흘릴 줄 아는 사람만이 자선에 기꺼이 참여한다.

 덮어두기, 안 캐묻기, 모른 체하기, 안 쳐다보기

 박 선생님과는 여러 번 여행에 대해 얘기도 했고 권유도 있었지만 나는 여행을 가지 않았다. 나는 어디든 떠나는 걸 무서워한다. 그러면 박 선생님은 나를 '추장'이라고 놀리면서 웃는다. 좋은 비유다. 아주 작은 인디언 마을 추장. 추장은 절대로 여행하지 않는다.

 "젤 꼭대기 단추까지 애를 쓰면서 끼우시더라고요."
 나는 그 말을 듣고 생각했다. 단정하고 완벽에 관한 욕구가 있는 사람이다.

 그래도 부인은 지친 모습으로 어떤 때는 넋 잃고 창가에 앉아 있기도 하면서 집안일을 다 꾸려가고 있었다. 요즘 누구네를 가나 흔히 마주치는 사람들이 파출부인데. 나는 이런 모습에서 부인의 애정을 읽는다. 철학을 읽는다. 내 손으로 나편을 일으키고 말겠다는 의지를 읽는다. 이 세상의 그 누구인들 나보다 더 정성껏 저 사람을 돌볼 수 없다는 신념이 정원 구석구석까지 차 있다.

 아프가니스탄, 가뭄과 전쟁으로 초토화된 회색빛 먼지 발판을 두 아이가 걷는다. 손을 잡고 걷는다. 아무런 문명의 잔재가 남아 있지 않다. 들판에 듬성듬성 풀이 자라고 그걸 뜯는 양 떼조차 없다. 양이 먹을 만큼의 양도 되지 않게 자라는 풀들을 그 어린이들이 먹는다.
 어린 여자아이는 입주변이 초록색이다. 풀물이 들어서 그렇다. 조금 큰 오빠는 그조차도 없다. 풀조차도 동생을 먹이느라고 조금 덜 먹었나 보다. 여자아이는 여섯 살쯤이고 오빠라는 소년은 한 열 살 돼 보인다. 전쟁으로 고아가 되어 벌판을 떠돌고 있다. 그래도 슬퍼하진 않는다.
 몇년이 흘렀는대도 TV에서 본 다큐멘터리가 생생히 기억난다. 그 소년의 절박한 얼굴과 그 동생의 편안한 태평이...... 그들은 그래서 거기서 버티고 사는 것이다. 극한 상황에서도 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한다. 그 의존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는 다른 한 사람에게는 바로 그 의존이 생명을 버티게 해주는 철심이 되어 강한 인간으로 변신한다. 모성이 그렇다. 전혀 무방비의 생명체가 그냥 놔두면 죽어버리는 생명체가 주어지면, 그 완벽한 의존이 주어지면 인간은 거의 신이 된 듯이 변화한다.

 암은 병균이 감염된 게 아니다. 내 몸속에서 스스로 돋아난 종유석이다. 피곤할 때 풀지 않은 피로가 쌓은 석회석이고, 굶고 또 굶으면서 손상된 내 내장 속에 천천히 새겨진 암벽화다. 수십 년에 걸쳐서 몸의 소리를 무시한, 야망과 과욕, 인문주의적인 편식에서 나온 독들이 저절로 만들어낸 퇴적층이다.

 눈앞에서 비밀을 다 펼쳐 보여줘도 모르던 과거가 너무 생뚱맞아 보였다. 아무것소 감추지 않는다. 다 드러내서 나열해놨는데도 인간들이 못 느끼고 못 볼 뿐이라는 걸 깨달았다. 문제와 답이 다 쓰인 칠판 앞에서 무엇이 문제고 무엇이 답인지를 모르는 멍청이일 뿐이구나.

 그는 별 볼일 없는 화가다. 그래도 나는 그의 그림도 시도 좋아한다. 너무나 개인적이어서 마치 덜 떨어진 나의 친구가 나에게만 보여주는 시 같고 그림 같아서 좋다.

 현실을 핑계대면서 비굴해지려는 인간들. 그 무엇이 우리를 장엄치 못하게 하는가.

 갑자기 맞은 편에서 무언가가 오고 있었다. 초등학교 운동회에서 공굴리기 할 때 여럿이서 굴리고 뛰어가던 공만큼 커다란 풀덩이가 나를 향해 굴러오고 있었다. 시각으로 형태에 대한 정의가 내려지기 전의 순간적인 놀라움, 알 수 없는 불안, 그런 정리되지 않은 정신의 혼란상태(후략).

 아들이 기억하는 나의 모든 순간이 유언장이 될 것이다.
그의 장점을 혹시 그가 잊을까봐 늘 깨우쳐주려고 노력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항상 그를 칭찬할 거리를 만들고 찾았다.

마타 Matta, 데이비드 호크니, 로세티<장미와 나이팅게일>, 프라다 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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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지금이라도 유학을 간다고 하면 할아부지가 반대허시겄지?"
 나는 그때도 그랬다.
 "아부지가 가시고 싶으면 가세요."
 나는 거침없이 대꾸했다. 유학이란 말은 오래 전, 청년 시절의 아버지가 접은 '학문에으 꿈'이라는 말과 같은 것이었다. 나는 나중에야 알았다. 그날 아버지가 내게 유학이라는 말을 꺼낸 것으로 당신의 마음속에서 '학문에의 꿈'을 완전히 장사지냈다는 것을.
 그러기 위해 아버지는 그날 내게 그 말을 했던 것이었다.
(중략)
 맘속으로는 이미 결정해놓고 무슨 일이든 한번 결정해놓고 나면 웬일인지 밀려드는 쓸쓸한 기분 때문에 마지막으로 던져보는 물음, 같은 것 말이다.

 승희 자취방에 승희는 없고 뜻밖에 승희 엄마가 와 계셨다.
 "악아, 니가 우리 승희 친구냐?"
 승희 엄마가 어쩐지 병중에 계신 할머니 같아 가슴이 뭉클했다.
 "네, 제가 승희 친구 해금이에요."
 "춥다, 들어오너라."
 승희 엄마는 내 발을 아랫목에 끌어다 이불로 덮어주고는 내 손을 꼭 감싸쥐었다. 또 눈물이 핑글 돌았다. 승희 엄마가 밥상을 차려 내왔다. 승희 엄마는 따뜻하고 밥은 맛있고 숭늉은 고소한데 나는 왜 자꾸만 코가 맹맹해지고 눈두덩이 뜨거워지는지 알 수 없었다.
 처음에는 승희 엄마가 할머니 같아서 그러는 줄 알았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왠지 돌아오지 않는 승희가 어딘가 눈 속을 헤매고 다닐 것만 같아 자꾸만 울음이 비어져나왔다. 딸을 기다리며 딸 친구에게 밥을 차려주는 승희 엄마가 슬퍼보여 나도 모르게 목이 메어왔다. 승희 엄마가 따뜻하게 느껴지면 느껴질수록 누가 나를 대놓고 구박하지도 않았는데 내 인생이 엄청나게 누군가로부터 천대받은 것만 같았다. 천대받은 서러운 인생이 승희 엄마한테 와서야 비로소 융숭한 대접을 받은 것만 같았다. 나는 눈물을 방울방울 떨어뜨리며 숭늉을 마셨다. 승희 엄마가 내 등을 토닥거려주며 깊은 속에서 나오는 한숨을 삼켰다.
 "악아, 우지 마라. 사는 것은 죄가 아닌게로 우리를 마라."

 "이상해서 말이야, 견딜 수가 없었어."
 아직도 반복되는 수경의 말에 나는 이제 더이상은 화낼 수가 없었다.
 "세상 사람들은 왜 아무렇지 않지? 아무렇지 않은 것이 나는 너무 이상해.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게 아닐까? 혹시 말이야, 우리나라 사람들이 먹는 물에 뭐든지 빨리 잊어먹게 하는 약이 섞여 있는 게 아닐까? 아니면 누군가 공기중에 누가 죽었든지 말든지 상관하지 않고 살아가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 약품을 살포한 것은 아닐까? 나는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밥먹고 뭇고 결혼하고 사랑하고 애 낳고 그러는게 이상해. 우리 신군 내가 이상하다지만 말이야."
 "미안해, 수경아, 미안해. 화내서 미안하고, 웃어서 미안하고, 밥 잘 먹고, 잠 잘 자서, 정말 미안해......"
 그건 진심이었다. 그 순간 수경이 화를 냈다.
 "왜, 왜, 니가 미안한 건데? 미안해하지 않아도 될 사람이 왜 미안하다고 하는 건데? 진짜 미안해해햐 할 사람은 가만있는데에, 왜, 왜 그러는 건데에. 내가 말했잖아. 난 단지 이상할 뿐이라고. 이상하고 이상해서 숨쉬기가 힘들 뿐이야. 나도 숨을 크게 쉬며 살고싶은데 그게 잘 되지 않아. 숨을 크게 쉬려면 가슴이 너무 아파. 여기 이 가슴 한가운데가 터져버릴 것만 같단 말이야."
 수경이 제 가슴을 주먹으로 콩콩 쳤다.
 "수경아, 내가 어떡해야 할까? 어떡해야 니 가슴이 아프지 않을까?"
 "너 때문이 아니라고 말했잖아. 그니까, 그니까......"
(중략)
 수경이는 아픈데 나는 왜 멀쩡할까. 나는 그제야 알았다. 나야말로 정말 이상한 애라는걸.

 경애도 가고 수경이도 없는 봄이지만 꽃은 피어날 것이다. 경애가 죽었을 때 어린애처럼 한번 터진 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때는 정작 울지도 못하다가 조금씩 조금씩 무너져내리는 수경이 앞에서 태용은 부끄러웠다. 해금이 말한 적이 있다.
 "내가 속상한 거는 수경이가 아프기 때문이 아냐. 왜, 왜 난 수경이처럼 아프지도 않고 밥도 잘 처먹고 잘 처자고 속없이 처웃기도 잘하고, 그러는 거냐고. 난 그게 승질이 난다고."
 수격이는 아픈데 자신은 멀쩡해서 해금이는 속상하다고 했지만, 태용은 부끄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경애가 죽었을 때 어린애처럼 목이 쉬도록 울었던 만큼 부끄러워 죽고만 싶었다. 그렇게 울고도 아프지 않고 멀쩡한 게 말이다.

 어머니가 집을 나가자 아버지는 만영과 만강을 두고 출가를 해버렸다. 자신의 부모를 원망하는 만영의 한마디는 이랬다.
 "그게 뭐냐, 책임감 없이."

 승희가 광주 자취방에 도착했을 때 엄마는 아무도 없는 빈방에서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뇌출혈이었는데 제때 손을 쓰지 않아 어이없게도 숨을 거두고 만 것이다. 엄마 장례를 치르고 나서 승희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행방을 감춰버렸다. 석 달을 찾아 헤매다가 우리는 승희를 잊기로 했다. 경애를 잊고 수경이를 잊고 이제 승희도 잊어버리자고. 그래야 우리가 살겠다고. 안 그러면 우리 모두 죽을 것만 같아서. 우리는 서로 자주 만나지도 말자고 했다. 모든 세상 사람들이 다 그러는 것처럼 우리도 이제 제발 아무렇지 않게 '미래를 꿈꾸면서 오늘을 충실히 살아가자'고, 승규가 말했고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뿔뿔이 흩어졌다.

 "봉쉑이 여자친구여? 그러면 잘되얐네. 요리 좀 차분히 앉아봐아."
 나는 때가 때이니만큼 '차분'할 수가 없었지만, 그래도 이봉석에 대한 추가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서 억지로 '차분히' 앉았다.
(중략)
 아무래도 이봉석이 집을 알려면 이미 감옥에 간 형 다음 차례로 감옥에 갈지도 모를 '이봉쉑이'의 비리를 '차분히' 들어줘야 할 것 같았다. 우리 인생이 그렇듯 '할 수 없이' 차분해져야 할 순간들이 오기도 한다.

 "역시 여자는 이쁘고 봐야 혀. 나나 늬그들같이 지 맘대로 생겨불면 인생이 낭패여. 안 그냐?"

 나는 막걸리 맛은 대충 알겠는데 아직 소주 맛은 도통 모르겠다. 정신이는 대학교에 들어가서 소주 맛을 제대로 알았다고 했다. 영금이가 소주를 잘 마시는 것도 영금이가 대학생이기 때문인가. 내 신분은 무엇일까. 나는 어쩌면 영원히 소주 맛을 모르는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
 "천천히 마셔. 그렇게 마시다간 인생 끝까지 못 가는 수가 있어."

 "그래, 영미가 있지. 마영미, 걘 노래를 잘하지. 난 힘으로, 걘 노래로, 그리고 넌 니가 가진 그 무엇으로든, 이 세상을 사랑하자. 이 세상에서 설움받고 핍박받는 서러운 민중들을 위해 우리는 우리 각자가 가진 그 무엇이든 아낌없이 내놓자, 해금아."

 문밖으로 얼핏 고모가 지나가는 게 보였다. 늦은 귀가였다. 영금을 흔들었다.
 "고모야. 고모랑 함께 들어가자."
 "고모라구? 우리 고몬 늘 마음을 착취당하지. 바보같이."
 나는 영금을 억지로 일으켜세웠다. 고모를 놓치면 내가 힘들어질 것 같았다.
 "고모오."
 고모가 화들짝 놀라며 다가왔다.
 "무슨 일이라냐?"
 "몰라요, 혁명을 한다나봐요."
 "혁명을 해? 기왕에 혁명을 하는 김에 사랑도 하재."
 "야 영금아, 고모가 혁명하는 김에 사랑도 하랜다."
 영금이 바보같이 피식 웃다 빗물 위로 푸욱, 쓰러졌다.

 이 고모는 니가 도대체 뭣 할라고 이 복잡헌 세상에 나와가꼬 이 욕을 보고 사는지 참말로 맘이 안타깝다아, 이 고무 차대기 같은 것아."

 승희도 그렇게 열심히 살고 있고 정신이도 서울 가서 치열하게 살고 있는데 나만 집 안팎의 근심거리로 전락한 것만 같아 견딜 수 없이 괴로웠다.

 "그치만 가난하면 행복하지 못해요. 우리 집만 봐도 어머니가, 아버지가, 형들이, 동생이 행복하지 못해요. 그래서 날마다 전쟁이죠. 사는 게 엉망진창이고, 기도 같은 건 할 줄도 모르고, 미래는 늘 오늘에 저당잡혀 있죠. 그래서 사는 게 나아질 수 없고, 그렇게 살다 죽을 것이 난 겁나요. 어쩌면 밀레는 가난해도 행복하게 살고 싶어서 저 그림을 그렸는지도 몰라요. 안 그러면 죽을 것 같아서. 많이 힘들고 고달프지만 그래도 평화롭게 살고 싶어서. 그리고 나도 그렇게 살고 싶어요. 정말로."
(중략)
 "그런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단다, 이환. 그러나, 그게 어디 쉬운 일이어야 말이지. 그냐, 안 그냐?"
 "......"
 "말문 막히는 말을 왜 허냐?"
 고모는 여전히 씩씩거렸다.
 "건방떨지 말라고오. 아직 기저귀도 안 뗀 것이 말여. 머? 가난해도 행복? 지랄 염병허고 자빠졌네."

 세상 사람 그 누구도 그렇다는 것을 알아보지 못할 때, 그래서 눈여겨보지 않을 때, 나 혼자 환의 아름다움을 보는 것이 나는 기뻤다. 나는 그가 그 이름처럼 얼마나 환한 사람인지를 세상 사람들이 몰라도 좋았다.

 한편으로 나는, 환이 왜 죽으려고 했는지응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이 슬펐다. 환과 나 사이에 내 힘으로 뛰어넘지 못할 거대한 장벽이 쳐져 있는 것만 같았다. 심지어는 환에게 내가 아닌, 나보다 이쁜 승희거나, 나보다 똑똑한 정신이거나, 하다못해 노래를 잘하는 영미 같은 여자친구가 있었더라면, 환이 굳이 죽으려고까지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을 살아갈 의지를 북돋아줄 만한 그 어떤 것도 내가 가지지 못해서 환이 죽으려고 했던 것일까.

 만영이 산 아래 동네의 깜박이는 불빛을 바라보며 담배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담배가 맛있냐?"
 "천상의 별, 지상의 별."
 만형이 하늘과 산 아래를 번갈아 가리키며 씨익 웃었다. 만영의 그런 태도는 노동하는 사람이 지닌 '여유'임이 분명했다.

 "인생이란 것이 한 큐에 설명이 안 되는 것인 줄은 안다만, 나는 당최 니년들 속을 모르겄다. 야 근디 영금이 걘 감옥서 아조 행복하드라이? 빠다 한 통에 그냥 입이 함지박만큼 벌어지는데...... 아이고 속없어라."
 엄마와 나는 비장한데 쇠창살 저쪽에서 영금은 명랑했다. 그것이 자칭 전사, 마영금의 힘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언젠가 영자네 집에서 영금의 술친구가 되어주고 있을 때, 만날 새우깡만 시키는 게 안돼 보였는지 영자가 자신들이 먹던 국을 한 그릇 가져다준 적이 있었다. 김칫국에는 영자 아이가 빠뜨린 밥알이 동동 떠다녔다. 영금이는 밥알이 떠 있든 말든 입이 함지박만하게 벌어졌다. 그때, 왜 그렇게 속없이 웃느냐는 내 핀잔에 영금이 폼을 잡고 말한 적이 있다.
 "정을 주는데 웃지, 그럼 우냐?"
 엄마는 집에 와서 끼니 때마다 반찬도 없이, 영금에게 차입시켜준 '빠다', 그러니까 마가린으로 밥을 비벼 멌었다.
 "이렇게 비벼 먹으면 감옥 밥도 먹을 만하겄다 야."
 천성적으로 밝은 엄마도 그러나, 그렇게 밥을 비벼 먹고 나서는 남몰래 울었다. 반찬 없이는 먹었지만 밥을 먹은 것조차 미안하고 아파서.

 "왜, 기분 나쁜가?"
 "기분 나쁘지요. 초면인데 교양 없이 반말을 하시니까."
 "아이고, 미안해요. 공장 밥만 먹다보니 언제 교양 쌓을 시간이 없어서리...... 하하하."
 남자릐 웃음소리는 혐오스러웠다. 정신은 말했다. 상대보다 힘이 세다고, 더 많이 배웠다고, 더 많이 가졌다고, 더 우월하다고 믿는 자들이 부리는 오만과 횡포와 모욕과 폭력과 무례함에 맞서기 위해서라도 우선은 그 오만과 횡포와 모욕과 폭력과 무례함을 견뎌내야 한다고. 모든 오만한 자들이, 모든 무뢰배들이 스스로 부끄러워할 떄까지. 견디고 견뎌서, 그 견디는 힘으로 우리가 아름다워지자고. 왜냐하면 모든 추함은 모든 아름다움 앞에서 결국 무릎을 꿇게 되어 있기 때문에. 동물에서 출발한 인간이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인간이기에, 동물적 본능의 시간에서 조금이라도 인간의 삶을 살기 위해 몸부림치기 때문이라고, 동물의 시간에서 인간의 시간으로 나아가기 위한 지난한 몸부림의 과정이야말로 진보의 역사라고, 정신은 힘주어 말했었다.
 오늘, 저 무뢰배의 오만이 횡행할 수 있는 이 야만의 구조, 이 동물적 상황을 나는 견뎌야 한다. 저항하기 위해 견딜 것. 아름다워지기 위해 지금은 견딜 것.

 야만의 시간을 인간의 시간으로 바꾸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이 진보의 역사라고.

 피흘리는 경애를 안고 목놓아 외쳤다는 수경이. 그러니까, 사람이 사람을 부르는 소리. 그러니까, 그것은 인간임을 외치는 소리. 그리고 수경은 목이 터져라 외치다가, 화답 없는 세상에 절망하여 저세상으로 떠났다.
 나는, 이제라도 회답해야 한다. 내가 인간이고자 한다면. 그리하여 내가 우리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인간의 시간 쪽으로 돌려놓고자 한다면.

 나는 꼭 어린애가 제 부모한테 바깥에서 당한 설움을 이르듯이 말했다.
 "경찰들이이, 무조건 우리만 패는 거에요 글쎄에. 우리같이이 힘없는 사람들이이 뭐가 무섭다고오 그렇게 때리는지이 정말 알 수가 없더라니까요."
 "그걸 질문이라고 하냐? 그거야 힘없으니까 그렇지. 힘센 사람을 때리겠어?"

 "그래서 인자 어떡헐래?"
 엄마는 내가 서울에서 내려온 이래로 틈만 나면, 나의 '인생계획'을 물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 엄마에게 말해줄 수 있는 인생계획이란 것이 없으므로 침묵할 수밖에.
 "너한테 겁나게 불리헌 질문이었던갑다이, 입을 딱 봉해분 것이."
 나는 밥만 먹었다.
 "엄마, 그것이 바로 묵비권이라는 거랍니다. 자신에게 불리한 질문에 대답하지 않을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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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굴이란 어떤 경우든 은폐와 신비화의 역할을 하는 것이라야 상징과 표현이라는 두 개의 요소로 환원된다. 스무살인 나의 얼굴은 날마다 껍질이 벗겨지는, 아직 역할을 얻지 못한 쓸쓸하고 적막한 탈이었다.

 나는 아직 나이에 관한 개념이 부족해 얼마 되지 않은 내 경험 속에서 나이의 양과 성격을 가늠하곤 했다. 경험하지 못한 나이에 대해선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고 사실 이해마저도 피상적이었다. 그들이 얼마나 노련한지 혹은 서툰지, 얼마나 늙었는지 아니면 아직 젊은지, 얼마나 안전한지 혹은 위험한지, 생에 대해 진지한지 기만적인지, 혹은 냉소적인지, 그리고 나를 어떤 눈으로 보는지, 모든 것이 늘 오리무중이었다.

 나는 대화를 단념했다. 한마디만 대꾸를 해도 곧바로 아버지의 십팔번인 관용구가 튀어나올 것이다. 쓸데없는솔, 혹은 턱도없는 소리. 어른들은 대화를 하지 않고 각자의 관용구를 울부짖는 것 같았다. 예를 들어 엄마는 아이고 무서워라, 인간이 무섭고 세월이 무섭고 돈이 무섭다라고 하고, 할머니는 귀신도 눈이 멀었지 왜 나를 아직도 안 잡아갈까라고 한다. 그리고 동생들은 누군가를 향해서라기보단 달을 향해 짖는 늑대처럼 두 눈을 꽉 감고 누구도 아닌 것을 향해 큰 소리로 울부짖거나, 웃거나 비명을 지르거나 법석을 떨 뿐이고 나는 침묵한다.

 댁은 커서 전화국 직원이 되고 싶었어요? 이미 다 커버린 나는 묵묵히 전화국 직원을 노려보았다. 자라서 소도시 전화국이나 우체국, 동사무소 같은 데에서 일하게 되는 인간들은 어떤 꿈을 꾼 것일까. 나는 그들을 볼 때 오직 그런 의문만이 들었다. 모든 것을 예상할 수 있는 인생을 살겠다고 꿈을 꾸었는지도 모른다. 예기치 않은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 생. 

 나는 그 일을 더이상 문제삼지 않았다. 그즈음엔 늘 그런식이었으니까. 나중에 알게 될 일투성이. 모든것은 유보되어 있었다. 삶은 기다림이다. 당장 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스무살이란 아직 시간 이전에 붙박여 있는 나이였다. 손오공이 얼굴만 내놓고 바위벽에 갇혀 있듯이. 삶이란 좀처럼 시작되지 않는다.

 둘 다 반말이었다. 높임말 같은 건 해본 적이 없는 태도였다. 어쩌면 자기보다 나이 많은 사람에게는 말을 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어딘가에서 퉁겨져나온 나사못 하나처럼 자신이 왜소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그 안도감은 어딘가 불편하고 구차하고 밀도가 형편없어. 창녀촌에서 완전히 벗어났는데도, 아직 그곳에 있는 것만 같은 낯익은 좌절감이 엄습하거든.

 고흐로 인해 카드뮴옐로는 광기의 색이 되었다. 모든 광기가 그렇듯 고흐의 옐로는 불투명하다. 출구 없는 고통이 야기한 혼란의 손질처럼 무수히 덧칠되어 색 자체가 틍증의 물증처럼 두껍다. 

 "수련아, 지구상의 사람들 육십오 퍼센트가 환생을 믿는단다. 누가 그러는데, 살아생전 자기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의 얼굴로 다시 태어난다는구나. 그러니까, 지금의 얼굴은 전생에 가장 사랑했던 사람의 얼굴인 거야."
 아까부터 카운터에 걸터앉아 팔꿈치를 세우고 두 손으로 얼굴을 싸안고 있는 마담이 말했다.
 "피, 거짓말. 아무도 사랑하지 않으면요?"
 "그러면 다시는 안 태어나지."

 어른들은 습관과 의무 속에서 살고 아이들은 충동과 잔소리 속에서 살며 나는 몽상과 도주의 욕망 속에서 살아가는 것 같았다.

 "넌 뭐가 되고 싶니?"
 성재가 물었다
 "몰라. 하지만 뭔가 특별한 것이 되고 싶어."
 "넌 빛나는 사람이 되소 싶은 거구나."
 "아니야, 대단한 게 되려는 건 아니고 나를 발견하고 싶은 거지. 내 속의 나를 꺼내보고 싶은 거야."

 "넌 뭐가 되고 싶니?"
 그녀는 거리의 좌판에서 도금목걸이를 고를 때처럼 가볍게 물었다. 하지만 그런 질문은 언제나 나를 난처하게 했다.
 (중략)
 "난 말이야, 패션 디자이너가 될 거야. 구월부터는 학원에 등록할 거야. 몇년 후에 사람들은 내가 만든 옷과 내 얼굴을 잡지에서 보게 될 거야. 그 다음엔 밀라노나 파리에서 공부를 할 거고 십년쯤 후엔 세계적인 패션지에도 얼굴을 내보일 거야."
 마리는 꿈이란 이렇게 꾸는 거야, 하는 식으로 오만하게 눈을 치떴다. 과연 멋진 꿈이었다.

 어떤 여자는 원래 나이가 많게 태어나는지도 모른다.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생을 알고 몇번이라도 다시 사는 것처럼 노회하게 살아가는지도...... 그녀에 비하면 나는 아주 어린 여자로 태어난 느낌이 들었다. 쉽게 자라지도 않고 쉽게 나이 들지도 않고 도저히 나를 초대한 이 세상에 익숙해지지도 않을 것 같았다.

 뒤섞인 상인들과 행인들을 골똘하게 내려다보고 있으니 가슴이 얼얼해졌다. 누구나 구체적으로 살고 있었다. 삶을 손으로 잡고 피부로 느끼고 맛을 본다. 중력을 어깨에 지고 두 다리로 정직하게 나르며. 나만 추상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았자.

 할머니는 실제로 죽어가고 있는데, 나는 죽음을 등진 채 덧없이 여름을 낭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죄책감은 달콤한 우울 정도일 뿐이었다. 실제로 할머니의 간호를 하는 일은 슬픔 같은 것과는 전혀 다른 일종의 싸움이니까.

 어쩌면 삶이란 꿈 따윈 없이 사는 것이 아닐까. 나는 집 밖에서, 세상에 없는 것을 헛되이 찾고 있는 것이 아닐까.

 불행과 도주도 습관이 된다.

 "이렇게 되려고 한 건 아닌데. 난 지금 어딜 향해서 가는 걸까. 갑자기 벼랑이 나타날 것만 같아. 방향을 돌릴 수도 없는 좁다란 지점에서, 나는 그때 무사히 뒤로 걸어나올 수 있을까."

 "넌 괜찮니?"
 그가 얼마나 염려스럽게 말했는지, 나에게 생긴 나쁜 소식을 나만 모르고 있는 기분이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나도 모르게 그렇게 물었다.

  디스코텍에서 나와서도 나는 유독 웃어댔다. 해경이 그런 나에게 할말이라도 있는 듯 화난 얼굴로 쳐다보았다. 웃음이 어느 정도 진정되자 이번엔 눈물이 어렸다. 몸 속의 얼음 조각이 녹듯이 두 눈에 아슴한 김이 어려 부풀어오르다가 눈을 깜박일 때면 그만 툭 터지며 흐르는 눈물. 눈물 속에 엄마의 얼굴이 커다랗게 팽창해 앞을 막아서곤 했다. 엄마만 아무도 속이지 못하고 사는 것 같았다. 잔인한 삶을 한순간도 속이지 못하고 혼자서 감당하고 있었다.

 "이 밀리미터 빗방울은 공처럼 둥글고 그보다 큰 빗방울은 기압에 눌려서 가로로 퍼진대. 그래서 햄버거같이 납작한 모양이 되는 거야. 그리고 빗방울이 팔 빌리미터 이상인 경우는 기압이 구멍을 뚫기 때문에 낙하산처럼 공중에 떠다니면서 천천히 땅 위에 떨어진대. 아쉽게도 눈물 모양 빗방울은 존재하지 않아."

 "선생님이 돌아와도 이제 연극 따윈 하지 않을 거야. 자칫하다간 인생에서 연기를 하게 될 테니까. 연기와 인생이 이렇게 가까이 있을 줄은 몰랐어. 이번에 연극을 하면서, 사람들은 누구나 정해진 대본으로 연기를 한다는 걸 깨달았어. 서로 대본을 모르는 사람들은 기본적인 의사소통조차 할 수 없어서 어긋나거나 스치고 말아. 말이 안통하네, 마음이 안 통하네, 이해가 안 되네, 수준이 다르네 하면서. 너의 대본에 대해 나는 몰라, 하는 거나 마찬가지야.
 서로의 대본을 알면 어떻게 되는지 아니? 자기가 아는 대본대로만 연기하도록 요구하는 거야. 더 이상하거나 다르면, 크게 속았다고 생각하지. 서로를 자기 대본 속에 가두려고 혈안이 되는 거야. 정말 끔찍한 감금 아니니? 난 뻔한 대본 속에 갇히지는 않을 거야. 진짜 삶을 살 거야. 진짜 삶은 조각조각 찢긴 대본처럼 불안정할지 모르지만, 그건 자신에 대한 발견이야."

 성장은 사회의 적응 과정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로부터 멀어지고 상처받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젊음은 꿈결같이 행복했던 시간이 아니라 상처를 뒤집어볼까봐 두려운 시절로 존재한다. 열정이 사라진 황폐한 일상이야말로 삶의 가장 본질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과정이 바로 성장이다. 스무살, 그것은 안정된 길로 접어드는 통과의례의 나이가 아니라 앞으로의 기나긴 삶에 처음으로 상처를 새겨넣게 되는 나이다.

[안마당이 있는 가겟집 풍경], [밤의 나선형 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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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연한 것처럼 했던 것들이 어느 날을 경계로 당연하지 않게 된다. 이렇게 해서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행위와 두 번 다시 발을 딛지 않을 장소가, 어느 틈엔가 자신의 뒤에 쌓여가는 것이다.

 "늘 말했잖아. 안 듣고 다니냐, 내 말."
 시노부는 불만스러운 듯이 부먹밥을 덥석 물었다.
 "쇼크인걸. 그래서인가, 여자아이들이 다가오지 않는 건."
 "그걸 깨닫는 데 2년 정도 늦구나, 너."

 무표정하다고 할까 쿨하다고 할까, 언제나 조용하고 차분하다. 그렇다고 해서 힘이 없거나 독불장군인 것도 아니고, 남자아이들에게는 의외로 인기가 많으며 존재감도 있다. 정신활동의 온도가 낮고 일정하다는 느낌이다.
 
 일상생활은 의외로 세세한 스케줄로 구분되어 있거 잡념이 끼어 들지 않도록 되어 있다. 어느 것이나 익숙해져 버리면 깊이 생각할 것 없이 반사적으로 할 수 있다.
 오히려 장시간 연속하여 사고를 계속할 기회를 의식적으로 배제하도록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자신의 생활에 의문을 느끼게 되며, 일단 의문을 느끼면 사람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그래서 시간을 촘촘히 구분하여 다항한 의식을 채워 넣는다. 그러면 의식은 언제나 자주 바뀌어가며 쓸데없는 사고가 들어갈 여지가 없어진다.

 "역시 있구나. 그런 청춘 드라마 같은 짓을 하는 사람."
 다카코가 진지하게 중얼거리자, 리카가 쓴웃음을 지었다.
 "이상한 것에 감탄하지 마."
 "그렇지만 말이야, 얘기로는 자주 듣잖아?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도 흔히 나오고. 현여름 밤의 경험, 임신했다, 낙태했다, 모두 몰래 비용을 모았다. 그렇지만 난 그게 도시 전설 같은 거라고 생각했었어. 친구의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하는 류의."
 "알 것 같아. 너무 정형화되어서 리얼리티가 없지."
 
 우리의 '인생'은 아직 멀었다. 적어도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우리들의 '인생'은 시작되지 않는다. 암묵적으로 그렇게 되어있다. '인생'이라고 부를 만한 것에 전념할 수 있는 시간은 아주 조금밖에 없다. 기껏해야 그 궁핍한 빈 시간을 변통하여 '인생'의 일부인 '청춘'인지 뭔지를 맛보자고 하는 것이 고작이다. 아직 시작되지도 않은 '인생'을 그 얼마 안 되는 빈 시간의 메인으로 삼아버린다는 것이, 나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다카코는 겉보기에는 무심해 보이지만, 알맹이는 의외로 순정파라니까"
 "무심해 보인다기보다 반응이 늦은 거지. 신경전달이 둔해서 얼굴에 감정이 나타날 때까지 시간이 걸릴 뿐이야."
 "아하하."
 "이거 정말이야. 그러니까 무슨 말을 들어도 한참 시간이 지나서 점점 화가 나기 시작하는 거야. 자주 그래. '그러고 보니, 그때 좀 심한 말을 들은 것 같은데, 빌어먹을, 그렇게 심한 말을 아다니.' 하는 식으로."

 생각해 보니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소문이지만, 이런 가십은 화제로서는 꽤 오래 가므로 좀처럼 아무도 말리려 하지 않는다.

 경치 같은 것, 제대로 보지 않았구나.

 "잔혹한 녀석이군. 오히려 사촌여동생을 공개처형하고 있다는 생각은 안 하나."

 밤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은 언제나 한순간의 일이다. 그때까지는 아직 밝다, 아직 초저녁이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느 틈엔가 빛과 어둠의 비율이 역전되어 있다는 것에 놀란다.

 "저 녀석, 특별한 녀석들과 친하군. 친구 필요 없습니다, 하는 얼굴을 하고 있는 주제에."

 "네가 빨리 훌륭한 어른이 되어 하루라도 빨리 홀로서기 하고 싶다고 생각한다는 건 잘 알아. 굳이 잡음을 차단하고 얼른 계단을 다 올라가고 싶은 마음은 알지만 말이야, 하지만 잡음 역시 너를 만드는 거야. 잡음은 시끄럽지만 역시 들어두어야 할 때가 있는 거야. 네게는 소음으로 밖에 들리지 않겠지만, 이 잡음이 들리는 건 지금 뿐이니까 나중에 테이프를 되감아 들으려고 생각했을 때는 이미 들리지 않아. 너, 언젠가 분명히 그때 들어두었다면 좋았을 걸 하고 후회할 날이 올 거라 생각해."

 의외로 피곤한 것은 눈이다. 하루 종일 초행길을 계속 걷고 있으니, 눈은 필사적으로 주위의 정보를 모으고 있다. 손목시계를 보면서 좀처럼 초점이 맞지 않아 눈을 깜박이고 있는 자신을 깨닫는다.

 지금까지의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귀찮지만 고등학교 마지막 기념 행사로서 좀더 여러 가지 것들을 제대로 생각할 계획어었는데. 여러 가지 것들을 제대로.
 생각해 보면 매년 이랬건 것 같다. 행사 당일까지는 끝까지 걸을 수 있을까 하는 불안에 우물쭈물하지만, 막상 시작되면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나고 마음에 남는 것은 기억의 웃물뿐, 끝난 후에야 겨우 여러 장면의 단편이 조금씩 기억의 정위치에 자리 잡아가며. 보행제 전체의 인상이 정해지는 것은 훨씬 나중의 일이다.
 그때는 어떤 인상으로 남게 될까.
 기억 속에서 나는 어떤 위치에 자리잡고 있을까. 나는 후회하고 있을까, 그리워하고 있을까. 내가 어렸구나 하고 쓴웃음을 짓고 있을까. 빨리 돌아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빨리 정위치에 자리 잡아주면 좋겠다.

 "신용이 없구나, 나란 인간."

 "타인에 대한 부드러움이 어른의 부드러움인걸."

 얼핏 쿨하게 보이는 시노부가 겉모습과는 달리 '열정적으로 이야기하는' 녀석이라는 것도 의외였다.

 "솔직한 아이네"
 "솔직하다고 할까. 뭔가 이상해. 사랑이 없어. 타산적이야, 타산적. 연애를 하고 싶은 것뿐이야. 나 남자친구 있습니다, 하고 말하고 싶은 것뿐이라고."
 "그럼 그 이야기, 물론 나시와키에게는?"
 "하지 않았어."
 "어떻게 할 거야? 둘이 사귀게 되면?"
 반사적으로 목소리를 낮추고 있었다. 도오루에게 들릴리도 없을탠데.
 "그러게 말이다. 사귀기 시작한 후에 말해봐야 심술 같을 거고."

 야비하구나. 아버지는.
 무슨 말인가 하다 어머니가 불쑥 중얼거린 적이 있었다. 그 이상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말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생략되어 있었다 - 아버지 자신이 저지른 짓이 스트레스가 되어 위를 다친 것이며, 병이 난 것으로 용서를 받은 거라 생각할 셈이었던 것이며, 두쌍의 처자를 남기고 혼자 이 세상에서 달아난 것이며.
 그렇다, 달아난 것이다, 아버지는. 두쌍의 모자를 지켜보는 것으로부터도, 혼자서 처자식의 경멸을 견뎌가는 것에서부터도.

 고통스러웠을 거야.

 지금까지 굳이 인정하지 않았지만, 도오루가 느낀 진짜 불쾌함은 실은 다른 곳에 있었던 것이다.
 고다 모녀는 멋있었다.
 겅은 수트를 말끔하게 차려입은 어머니 쪽은 품격이 있고 당당했으며, 교볻 차림의 딸은 아주 침착하며 총명함이 얼궁에 배어 있었다. 거기에 비해 기력을 잃은 유족인 자기네 모자는 어딘지 쓸쓸하고 비참하게 느껴졌다. 그 순간,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열들감을 느낀 것이 그에게는 굴욕적이며 불쾌했던 것이다.

 지금 여기 있는 것은 저주같은 의지뿐이다. 길고 긴 행렬을 그 강박관념만이 지탱하고 있다.

 "일단 비밀로 해주지 않을래? 그런 것, 문제로 삼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그런 것, 어째서 타인에게 말할 필요가 있는 거지?"
 유이치는 왜 그런 바보같은 부탁을 하니, 하는 얼굴로 다카코를 보았다.

 "다카코가 신기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은, 분명 관대한 탓이라고 생각해."
 "엉?"
 다카코는 의아한 듯이 유이치의 얼굴을 보았다.
 "다카코의 얼굴을 볼 때마다 그것을 제대로 표현할 말을 줄곧 발견하지 못했는데, 지금의 이야기를 듣고 그것이 '관대함'이라는 것을 알았어. 우리 정도의 아이에는 그런 얼굴이 드물기 떄문이지. 다카코는 처음부터 용서하고 있었던 거야.

 나는 용서 따위 하지 않았다.
 갑자기 그런 생각을 했다. 역시 유이치의 눈은 통찰력이 없다. 아니, 그는 성격이 좋고 이성적이어서 사물을 보는 눈이 부드러운 것이다.
 나는 포기하고 있다. 달아나고 있다. 타인에게 부정되거나 받이들여지지 못하는 것이 두려워서 처음부터 포기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누구도 용서 따위 하지 않았으며 용서할 생각도 없다. 그야말로 지금 이곳을 걷고 있는 누구보다 오들오들 떨며 번들번들거리고 있는 것이다.
 
 "말하지 마."
 "물론, 아무에게도 말 안 해."
 "어차피 고백할 마음 따위 없거든."
 "어째서?"
 치아키는 작게 고개를 저었다.
 "그냥. 그렇게 생각해. 고백한다고 어떻게 될 것도 아니고. 별로 어떻게 되고 싶은 것도 아니고. 이재부터 수험준비 열심히 해서 졸업하는 것뿐이잖아.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는 상대가 있는 것만으로 좋아."
 치아키가 하고 싶어하는 말은 잘 알았다.
 좋아한다는 감정에는 답이 없다. 무억이 해결책인지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으며, 스스로도 좀처럼 찾을 수 없다. 훗날의 행복을 위해 가슴속에 간직하고 허둥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좋아한다는 마음은 어떻게 매듭을 지으면 좋을까. 이떤 상태가 되면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만족할 수 있을까. 괜히 행동을 일으켜 후회하기보다 마음속에만 소중이 간직하는 편이 나을 때도 있는 것이다.

 미와코는 얼른 돌아서 걷기 시작했다. 이런 점도 미와코 답다. 금세 기분을 바꾸어 이러니저러니 험담하지 않으며, 혼자서도 행동 할 수 있다.

 "미와링은 여름방학 숙제, 깔끔하게 전반에 끝내는 타입이지?"
 "아냐. 힘들어질 것 같은 것만 본능적으로 간파해서 그때그때 해치워. 난 정확히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앞뒤만 맞추는 타입이야."
 "그것고 재능이야. 나 같으면 해야 되는데, 해야 되는데,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시간이 안 맞는데, 하는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게다가 기분 나쁜 예감까지 맛보면서도 결국 끝까지 노는 타입인걸."
 "그럴지도."
 "그것도 전혀 즐겁지 않아, 그 놀이가. 놀려면 즐거워야 할 텐데, 줄곧 숙제가 걱정되어 조금도 즐기지 못하는 최악의 타입."
미와코는 쿡쿡 웃었다.
 "그럴지도."

 여름방학 때의 그 불쾌한 느낌. 바로 저기까지 끝이 다가와 있다. 하루하루 확실하게 다가온다. 지금 시작하면 아직 해낼 수 있다. 조금이라도 빨리 시작하면, 시작한 만큼 어떻게 된다. 그렇게 머리로는 알고 있으면서 도저히 손을 대지 못하는 악순환. 일단 책상에는 앉아 보지만 다른 일을 하거나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을 시작하여 핵심 과제의 주위만 어물쩍거리다, 중요한 것은 조금도 시작하지 못한다. 하루하루 미루는 동안 정말로 피할 수 없는 상황에 빠져, 후회막급의 심정으로 해야 할 일의 양에 기겁하게 되는 여름의 끝.
 어째 이렇게 칠칠치 못한 아이일까. 다카코는 뜬금없는 자기혐오에 빠진다.

 "그건 너무 아름다운 의견이라고 생각하는데. 걔, 꽤 잔혹한 데가 있어."

 "그것고 그렇구나. 그렇게까지 솔직하면 인생 편할지도 모르지."
 미와코가 자기 대신 확실하게 불평을 해주어서, 다카코는 우치보리 료코에 대해서 관대해질 수 있었다.

 "으음, 지금도 좋아하지만, 앞으로 계속 사귀어도 더 이상 발전할 것 같지 않다는 걸 서로 알고 있었으니까."
 "너무해. 아까워. 그렇게 잘 어울리는 커플이 어디 있다구. 왜 또 그런."
 미와코가 피식 웃는다.
 "다카코니까 말하는데 말이야,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뭐라고?"
 "아마 그도 그렇게 생각했을 거야. 우리 무척 교만했다고 생각하는데, 서로 우리 커플은 환상적이라고 믿었어. 물론 그는 멋있었고 좋은 점도 많아 거기에 끌렸지만, 우린 좋은 점이 많은 멋진 상대에게 걸맞는 자신을 자화자찬하고 있었을 뿐이야. 우린 정말 멋지지, 하고 함께 자기만족에 빠져 있었을 뿐이라고. 서오 작년쯤부터 어렴풋이 그런 생각은 했지만, 올해 들어 확실히 그걸 자각한 거지. 그러고 나니 둘 다 그걸 견딜 수 없게 된 거야,"

 "그렇긴 하지만 분명 뭔가 했을 거야. 그래도 안나인걸. 엽서에 쓰면서 그렇게 적당히, 무책임한 말은 하지 않아."

 "시시한 풍경이구나."
 "그렇게."
 "그러나 이제 평생 두 번 다시 이 자리에 앉아서, 이 각도에서 이 경치를 바라보는 일은 없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어제부터 걸오온 길의 대부분도 앞으로 두 번 다시 걸을 일 없는 길, 걸을 일 없는 곳이다. 그런 식으로 해서 앞으로 얼마만큼 '평생에 한 번'을 되풀이해 갈까. 대체 얼마만큼 두 번 다시 만날 일 없는 사람을 만나는 걸까. 어쩐지 무서운 느낌이 들었다. 

 "우와, 정말 싫다. 재수없는 계집애."
 "그렇지. 그래서 걔는 이런 식으로 나시와키와 함께 걷기를 노렸던 것이라 생각해."
 "응 나도 그렇게 생각해. 빌어먹을, 나도 말해줘야지. 꼴좋다."
 "꼴 좋다."
 "뭐야, 뭐가 꼴 좋다는 거야."

 "정말, 어지간히 끈질기구나, 너도."
 "끈기가 있는 거라고 말해줘."

 "응, 실은 나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했어."

 "다카코도 참 재미있구나, 그런 녀석과도 어울릴 수 있고. 폭넓게 커버하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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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nike shoes 2013.07.18 23:00 address edit & del reply

    태양이 바다에 미광을 비추면,나는 너를 생각한다.



[본문 조각 스크랩]

 어른들은 겉으로는 가끔, 자기들 삶의 참담함에 대해 차분히 앉아서 곰곰히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리곤 이해도 하지 못한 채 통탄하고, 고통 받고 쇠약해지고 의기소침해진다. 그들은 마치 무언가를 깨닫고 만족한 듯 "우리 어릴 적 꿈은 어찌 되었는고?" 하고 묻는다. 그러면서 "그 꿈들은 날아갔고, 인생은 개 같은 것"이라고 답한다. 나는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이런 기짜 명석함이 싫다. 실제로 그들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이해하지도 못하고, 그냥 울고 싶은 아이들이랑 똑같다.

 이 사실은 울어도 될 만큼 슬픈 것이다.

 고양이들의 유일한 의미는 움직이는 장식품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 개념이 지적으로 아주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엄마는 어렴풋하게나마 고양이들의 잠재적인 장식성을 의식하고 있지만, 사람들에게 하듯 집요하게 고양이에게 말을 건낸다. 만약 램프나 작은 조각상이었다면 그렇게 말을 걸었을까. 아이들은 꽤 나이가 들 때까지도, 움직이는 모든 것은 영혼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것 같다.

 어떤 일을 방지하려면 현재 일어난 일을 인정해야 하는데도. 그들은 무례한 충동이라곤 전혀 없는 멋진 동물 인형을 산책시키고 있다고 짐짓 티를 냈기 때문에, 개들이 서로 엉덩이 냄새를 맡거나 불알을 핥을 때, 멈추라고 악을 쓰지 못했다.

 콜롱브와 함께 있으면서 무서운 건 종종 그 애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는 인상을 받을 때이다. 콜롱브가 감정이라고 드러내는 건 모두 꾸며진 가짜라서, 난 그 애가 뭘 느끼긴 하는지조차 의문이다. 그리고 가끔 그게 무섭다. 어쩌면 그 앤 완전 환자이고, 그래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뭔가 진짜를 느끼려고 하기 때문에, 혹 터무니없는 행동을 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난 이런 신문 기사 제목을 상상한다.
'그르넬 가의 네로 : 한 젊은 여자가 자기 집 아파트에 불을 질렀다. 왜 그런 행동을 했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감동을 느껴보고 섶었다고 대답했다.'

 난 아르텡스 씨가 정말로 못된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 아빠는 별 재미없는 어른 흉내를 내는 어린아이일 뿐이다. 하지만 아르텡스 씨는... 제일로 못된 사람이다. 네기 못됐다고 할 때는, 적대적이고 잔인하고 혹은 포악하다는 걸 뜻하는 게 아니다. 대신 내가 정말로 못됐다고 말할 때는, 자신 속에 있을 수 있는 어떤 좋은 것도 다 거부한 나머지 그가 여전히 살아 있는데고 송장이라 할 만한 사람을 말한다. 왜냐하면 진짜 못된 사람들은 당연히 모든 사람들을 싫어하고, 특히 자기 자신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는 것은, 사람이 살아있으면서도 죽게 만들고, 자기가 자기인 것에 대해 구토를 느끼지 않으려고 나쁜 감정들은 물론 좋은 감정들까지 모두 무감각하게 만든다.

 저녁 아홉시, 일을 끝내고 나서 난 문득 늙었다고 느껴져 매우 기분이 울적했다. 난 죽음은 두렵지 않다. 하지만 견디기 힘든 것은 기다림이고, 그것은 우리가 싸워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느끼는, 어쩔 수 없이 도달할 그 순간의 기다림이다.

 인생의 변화 그 속에서 영원을 성찰하기.

 어쨌든 분명 나는 노인들이 약간은 존경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양로원에 간다는 건, 확실히 그 존경이 끝난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가 태어난 자기 고향 근처의 양로원에 그를 위탁했고, 자식들은 일년에 두 번밖에 그롤 보러 오지 못한다. 반자들을 위한 이 양로원은 방을 나눠 써야 하고, 음식은 역겹고, 감독은 그 자신도 언젠가 입주자들과 같은 운명을 따르게 될 거라는 믿음을 저버리고 입주자들에게 막 대하는 양로원이다.

 나는 너무 일찍. 인생은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간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만일 사람이 다음 날을 걱정한다면, 그건 현재를 구축할 줄 모르기 때문이고, 우리가 현재를 구축할 줄 모른다면 그건 내일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그러나 내일은 항상 오늘이 되기 때문에 그러면 끝장이다.

 그러므로 이 모든 걸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중요한 건 지금이라는 걸 생각해야 한다.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모든 자신의 힘을 다해, 지금 뭔가를 구축해야 한다. 매일 자기 스스로를 극복하고, 그 매일을 불멸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양로원을 항상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어야 한다. 자기만의 에베레스트를 한 발짝씩 기어오르고, 그래서 그 발절음이 조금씩 영원이 되로록 기어올라야 한다.
 미래, 그건 산 자들이 진정한 계획을 가지고 현재를 구축하는 데 쓰인다.

 콜롱브는 그녀를 혐오하고, 그녀를 인류의 쓰레기라고 생각한다.

 난 처음으로, 사람들을 살피고, 저 너머를 바라보는 어떤 사람을 만났다. 우리는 결코 우리가 확신하는 저 너머를 보지 않으며, 더 심각한 것은 우리가 만남을 단념했다는 것, 이 영원한 거울들 속에서 우리 자신을 알아보지도 못하면서도 자기 자신만을 만나려 한다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그걸 깨닫는다면, 만약 우리가 타인 속에서 결코 자기 자신밖에 바라보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가 사막 속에 홀로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우린 미쳐버릴 것이다.
 엄마는 손님을 대접할 때, 엄마는 엄마 자신에게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하며 자기 자신의 맛을 음미할 뿐이다. 아빠가 커피를 마시고 신문을 읽을 때, 그는 거울 속에서 자기 자신을 응시하는 것이다. 콜롱브가 누군가에 대해서 비난할 때, 그녀는 그녀 자신의 그림자를 비난하는 것이고, 사람들이 수위 아줌마를 지나칠 때, 그들은 그녀가 그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허공밖에 보지 못하는 것이다.

 마누엘라에게 실내 장식가란 호화스런 소파 위에 쿠션을 비치하고, 두 걸음 물러서서 그것이 주는 효과를 감탄하는, 지극히 가벼운 존재이다.

 나는 정신분석을, 지속적인 고통에 대한 사랑을 놓고 기독교와 경쟁하는 것으로밖엔 보이지 않는다.

 지성은, 신성한 재능이 아니라 영장류의 유일한 무기이다.

 난 누군가 내게 말할 때 날 배려해주는 사람을 만난 셈이다. 그는 찬성이나 반대를 노리는 대신, "넌 누구니? 나랑 얘기하고 싶나? 너랑 있으면 정말 즐거워!"라고 말하듯 날 바라보았다. 난 바로 이게 예절이라고 말하고 싶고, 그건 자신이 여기 존재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그런 태도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자연에 대해 품고 있는 애정을 생각해보면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가소로운 존재이고 지구의 표면에서 우글거리는 추한 기생물인지를 가르쳐 주는 동시에 우리에게 살아갈 가치가 있음을 알려준다. 그건 우리에겐 우리가 만들지 않은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 다른 사람의 원피스란 말씀이세요?"
 "넵"
 미누엘라가 약간 샐쭉해져서 말했다.
 "하지만 옷을 달라는 일은 없을 거에요. 그 부인은 지난주에 죽었거든요. 누군가 원피스를 재단사에게 맡겼다는 걸 알 깨까진... 오주 씨랑 저녁식사를 열 번도 더 할 수 있을 거에요."
 "죽은 사람의 원피스라고요?"
 나는 하얗게 질려서 되뇌었다.
 "그럴 순 없어요"
 "왜요?"
 눈썹을 찡그리며 마누엘라가 물었다.
 "그녀가 살아있는 것 보단 낫잖아요. 만약에 당신이 얼룩이라도 묻혔다고 상상해봐요. 당장 세탁소까지 달려가야 하고,변명거리르,ㄹ 찾아야 항 테고, 난리법석이 나겠죠."
 마누엘라의 실용주의에는 은하계 같은 것이 있다.

흥미로운 움직임의 발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백삼십 유로짜리 팬티, 어쨌든 엄청나게 가는, 길이가 몇 센티미터밖에 되지 않는 레이스일 뿐이었다. 그러니까 상대방에게 미소를 짓고, 팬티를 잘 붙잡고, 그것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되 찢어서는 안 된다. 여러분에게 분명히 말하지만, 이 세상의 물리법칙은 변함없는 것이기에 이 동작은 불가능했다. 몇 번의 헛된 시도 후에, 그들은 뉴턴에게 아멘을 외쳤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다른 방법으로 전쟁을 속행해야 했다.
 모두가 아는 것처럼 외교는 힘의 관계가 동등할 때 항상 실폐한다. 그래서 "아, 제 생각엔 제가 더 발랐던 것 같은데요, 존경하는 부인" 이라는 말로 시작되었던 협상은 그다지 큰 성과를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내가 엄마 곁으로 갔을 땐 "난 절대로 놓지 않을 거에요"에 이르러 있었던 두 전투병의 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엄마가 졌다. 내가 그녀 곁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자신이 존경받을 만한 가정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기억해냈고, 내 앞에서 품위를 잃지 않으면서 상대의 얼굴에 왼손을 올려붙이는 행동은 엄마에겐 불가능해 보였다. 그리하여 그녀는 오른손의 용도를 되찾았고 팬티를 놓았다.

 매일 나는 언니가 치욕의 늪에 더 이상은 깊숙히 박힐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매일 나는 그녀가 그러고 있는 것에 놀란다.

 성공하고 싶으면 사람들이 잘 안 보고 연구가 많이 안 된 낯선 텍스트를 잡아서, 그것의 문자 그대로의 의미를 무시하고, 거기거 저자 사신도 인식하지 못했던 의도를 찾아서, 그것을 원래의 주장과 비슷한 지경에 이르기까지 변형하면 된다. (어떻게 이럴 수 있냐고 누군가가 물으면 개념에서의 무의식은 의식적인 모든 의도들보다 훨씬 강력하기 때문이라고 답하면 된다.)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지나가는 것을 우리가 포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 이것이 살아있는 것이리라. 죽어가는 순간들을 추적하는 것이.

난 내 주위에 그 누구에게도 잘 해줄 수 없었기 때문에 내가 고통스러웠다는 것을 깨달았다. 난 아빠, 엄마, 특히 콜롱브를 원망했는데, 왜냐하면 난 그들에게 쓰모 있는 사람이 될 수 없었고, 난 그들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병은 너무 깊고, 나는 너무 약하다. 나는 그들의 증세를 잘 보고 있지만, 난 그들을 치료할 능력이 없다. 그리고 그것은 결과적으로 나 역시 그들처럼 병자로 만들었는데, 난 그걸 알지 못했다.
 확실한 것은 어쨌든, 난 내가 고칠 수 없는 사람들을 벌하면서 나를 치유할 수는 없다. 나를 치료하기 위해, 다른 이들을 치료할 수 없다고 슬퍼하는 대신에 다른 걸 해야한다.

 나는 더욱 심하게 흐느껴 울었다. 팔로마가 나를 배신했던 것이다.

 내가 이제 그에게서 이 미터 정도 떨어져 있을 때, 감자기, 마치 수천의 악마가 그를 쫓아오기라도 하듯이 그는 전력질주를 했다.

 너를 배신한다는 감정을 느낀다. 죽는다는 건 너를 정말로 죽이는 것만 같다. 이젠 우리에 의해서만 족손했었던 자들을 죽여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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