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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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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른들은 겉으로는 가끔, 자기들 삶의 참담함에 대해 차분히 앉아서 곰곰히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다. 그리곤 이해도 하지 못한 채 통탄하고, 고통 받고 쇠약해지고 의기소침해진다. 그들은 마치 무언가를 깨닫고 만족한 듯 "우리 어릴 적 꿈은 어찌 되었는고?" 하고 묻는다. 그러면서 "그 꿈들은 날아갔고, 인생은 개 같은 것"이라고 답한다. 나는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이런 기짜 명석함이 싫다. 실제로 그들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이해하지도 못하고, 그냥 울고 싶은 아이들이랑 똑같다.

 이 사실은 울어도 될 만큼 슬픈 것이다.

 고양이들의 유일한 의미는 움직이는 장식품이라는 것이다. 나는 이 개념이 지적으로 아주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엄마는 어렴풋하게나마 고양이들의 잠재적인 장식성을 의식하고 있지만, 사람들에게 하듯 집요하게 고양이에게 말을 건낸다. 만약 램프나 작은 조각상이었다면 그렇게 말을 걸었을까. 아이들은 꽤 나이가 들 때까지도, 움직이는 모든 것은 영혼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것 같다.

 어떤 일을 방지하려면 현재 일어난 일을 인정해야 하는데도. 그들은 무례한 충동이라곤 전혀 없는 멋진 동물 인형을 산책시키고 있다고 짐짓 티를 냈기 때문에, 개들이 서로 엉덩이 냄새를 맡거나 불알을 핥을 때, 멈추라고 악을 쓰지 못했다.

 콜롱브와 함께 있으면서 무서운 건 종종 그 애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는 인상을 받을 때이다. 콜롱브가 감정이라고 드러내는 건 모두 꾸며진 가짜라서, 난 그 애가 뭘 느끼긴 하는지조차 의문이다. 그리고 가끔 그게 무섭다. 어쩌면 그 앤 완전 환자이고, 그래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뭔가 진짜를 느끼려고 하기 때문에, 혹 터무니없는 행동을 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난 이런 신문 기사 제목을 상상한다.
'그르넬 가의 네로 : 한 젊은 여자가 자기 집 아파트에 불을 질렀다. 왜 그런 행동을 했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감동을 느껴보고 섶었다고 대답했다.'

 난 아르텡스 씨가 정말로 못된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다. 아빠는 별 재미없는 어른 흉내를 내는 어린아이일 뿐이다. 하지만 아르텡스 씨는... 제일로 못된 사람이다. 네기 못됐다고 할 때는, 적대적이고 잔인하고 혹은 포악하다는 걸 뜻하는 게 아니다. 대신 내가 정말로 못됐다고 말할 때는, 자신 속에 있을 수 있는 어떤 좋은 것도 다 거부한 나머지 그가 여전히 살아 있는데고 송장이라 할 만한 사람을 말한다. 왜냐하면 진짜 못된 사람들은 당연히 모든 사람들을 싫어하고, 특히 자기 자신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는 것은, 사람이 살아있으면서도 죽게 만들고, 자기가 자기인 것에 대해 구토를 느끼지 않으려고 나쁜 감정들은 물론 좋은 감정들까지 모두 무감각하게 만든다.

 저녁 아홉시, 일을 끝내고 나서 난 문득 늙었다고 느껴져 매우 기분이 울적했다. 난 죽음은 두렵지 않다. 하지만 견디기 힘든 것은 기다림이고, 그것은 우리가 싸워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느끼는, 어쩔 수 없이 도달할 그 순간의 기다림이다.

 인생의 변화 그 속에서 영원을 성찰하기.

 어쨌든 분명 나는 노인들이 약간은 존경받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양로원에 간다는 건, 확실히 그 존경이 끝난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가 태어난 자기 고향 근처의 양로원에 그를 위탁했고, 자식들은 일년에 두 번밖에 그롤 보러 오지 못한다. 반자들을 위한 이 양로원은 방을 나눠 써야 하고, 음식은 역겹고, 감독은 그 자신도 언젠가 입주자들과 같은 운명을 따르게 될 거라는 믿음을 저버리고 입주자들에게 막 대하는 양로원이다.

 나는 너무 일찍. 인생은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간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만일 사람이 다음 날을 걱정한다면, 그건 현재를 구축할 줄 모르기 때문이고, 우리가 현재를 구축할 줄 모른다면 그건 내일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그러나 내일은 항상 오늘이 되기 때문에 그러면 끝장이다.

 그러므로 이 모든 걸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중요한 건 지금이라는 걸 생각해야 한다.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모든 자신의 힘을 다해, 지금 뭔가를 구축해야 한다. 매일 자기 스스로를 극복하고, 그 매일을 불멸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양로원을 항상 머릿속에 떠올리고 있어야 한다. 자기만의 에베레스트를 한 발짝씩 기어오르고, 그래서 그 발절음이 조금씩 영원이 되로록 기어올라야 한다.
 미래, 그건 산 자들이 진정한 계획을 가지고 현재를 구축하는 데 쓰인다.

 콜롱브는 그녀를 혐오하고, 그녀를 인류의 쓰레기라고 생각한다.

 난 처음으로, 사람들을 살피고, 저 너머를 바라보는 어떤 사람을 만났다. 우리는 결코 우리가 확신하는 저 너머를 보지 않으며, 더 심각한 것은 우리가 만남을 단념했다는 것, 이 영원한 거울들 속에서 우리 자신을 알아보지도 못하면서도 자기 자신만을 만나려 한다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그걸 깨닫는다면, 만약 우리가 타인 속에서 결코 자기 자신밖에 바라보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가 사막 속에 홀로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우린 미쳐버릴 것이다.
 엄마는 손님을 대접할 때, 엄마는 엄마 자신에게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하며 자기 자신의 맛을 음미할 뿐이다. 아빠가 커피를 마시고 신문을 읽을 때, 그는 거울 속에서 자기 자신을 응시하는 것이다. 콜롱브가 누군가에 대해서 비난할 때, 그녀는 그녀 자신의 그림자를 비난하는 것이고, 사람들이 수위 아줌마를 지나칠 때, 그들은 그녀가 그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허공밖에 보지 못하는 것이다.

 마누엘라에게 실내 장식가란 호화스런 소파 위에 쿠션을 비치하고, 두 걸음 물러서서 그것이 주는 효과를 감탄하는, 지극히 가벼운 존재이다.

 나는 정신분석을, 지속적인 고통에 대한 사랑을 놓고 기독교와 경쟁하는 것으로밖엔 보이지 않는다.

 지성은, 신성한 재능이 아니라 영장류의 유일한 무기이다.

 난 누군가 내게 말할 때 날 배려해주는 사람을 만난 셈이다. 그는 찬성이나 반대를 노리는 대신, "넌 누구니? 나랑 얘기하고 싶나? 너랑 있으면 정말 즐거워!"라고 말하듯 날 바라보았다. 난 바로 이게 예절이라고 말하고 싶고, 그건 자신이 여기 존재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그런 태도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자연에 대해 품고 있는 애정을 생각해보면 우리는 우리가 얼마나 가소로운 존재이고 지구의 표면에서 우글거리는 추한 기생물인지를 가르쳐 주는 동시에 우리에게 살아갈 가치가 있음을 알려준다. 그건 우리에겐 우리가 만들지 않은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럼 다른 사람의 원피스란 말씀이세요?"
 "넵"
 미누엘라가 약간 샐쭉해져서 말했다.
 "하지만 옷을 달라는 일은 없을 거에요. 그 부인은 지난주에 죽었거든요. 누군가 원피스를 재단사에게 맡겼다는 걸 알 깨까진... 오주 씨랑 저녁식사를 열 번도 더 할 수 있을 거에요."
 "죽은 사람의 원피스라고요?"
 나는 하얗게 질려서 되뇌었다.
 "그럴 순 없어요"
 "왜요?"
 눈썹을 찡그리며 마누엘라가 물었다.
 "그녀가 살아있는 것 보단 낫잖아요. 만약에 당신이 얼룩이라도 묻혔다고 상상해봐요. 당장 세탁소까지 달려가야 하고,변명거리르,ㄹ 찾아야 항 테고, 난리법석이 나겠죠."
 마누엘라의 실용주의에는 은하계 같은 것이 있다.

흥미로운 움직임의 발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백삼십 유로짜리 팬티, 어쨌든 엄청나게 가는, 길이가 몇 센티미터밖에 되지 않는 레이스일 뿐이었다. 그러니까 상대방에게 미소를 짓고, 팬티를 잘 붙잡고, 그것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되 찢어서는 안 된다. 여러분에게 분명히 말하지만, 이 세상의 물리법칙은 변함없는 것이기에 이 동작은 불가능했다. 몇 번의 헛된 시도 후에, 그들은 뉴턴에게 아멘을 외쳤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다른 방법으로 전쟁을 속행해야 했다.
 모두가 아는 것처럼 외교는 힘의 관계가 동등할 때 항상 실폐한다. 그래서 "아, 제 생각엔 제가 더 발랐던 것 같은데요, 존경하는 부인" 이라는 말로 시작되었던 협상은 그다지 큰 성과를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내가 엄마 곁으로 갔을 땐 "난 절대로 놓지 않을 거에요"에 이르러 있었던 두 전투병의 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엄마가 졌다. 내가 그녀 곁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자신이 존경받을 만한 가정의 어머니라는 사실을 기억해냈고, 내 앞에서 품위를 잃지 않으면서 상대의 얼굴에 왼손을 올려붙이는 행동은 엄마에겐 불가능해 보였다. 그리하여 그녀는 오른손의 용도를 되찾았고 팬티를 놓았다.

 매일 나는 언니가 치욕의 늪에 더 이상은 깊숙히 박힐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매일 나는 그녀가 그러고 있는 것에 놀란다.

 성공하고 싶으면 사람들이 잘 안 보고 연구가 많이 안 된 낯선 텍스트를 잡아서, 그것의 문자 그대로의 의미를 무시하고, 거기거 저자 사신도 인식하지 못했던 의도를 찾아서, 그것을 원래의 주장과 비슷한 지경에 이르기까지 변형하면 된다. (어떻게 이럴 수 있냐고 누군가가 물으면 개념에서의 무의식은 의식적인 모든 의도들보다 훨씬 강력하기 때문이라고 답하면 된다.)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지나가는 것을 우리가 포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 이것이 살아있는 것이리라. 죽어가는 순간들을 추적하는 것이.

난 내 주위에 그 누구에게도 잘 해줄 수 없었기 때문에 내가 고통스러웠다는 것을 깨달았다. 난 아빠, 엄마, 특히 콜롱브를 원망했는데, 왜냐하면 난 그들에게 쓰모 있는 사람이 될 수 없었고, 난 그들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병은 너무 깊고, 나는 너무 약하다. 나는 그들의 증세를 잘 보고 있지만, 난 그들을 치료할 능력이 없다. 그리고 그것은 결과적으로 나 역시 그들처럼 병자로 만들었는데, 난 그걸 알지 못했다.
 확실한 것은 어쨌든, 난 내가 고칠 수 없는 사람들을 벌하면서 나를 치유할 수는 없다. 나를 치료하기 위해, 다른 이들을 치료할 수 없다고 슬퍼하는 대신에 다른 걸 해야한다.

 나는 더욱 심하게 흐느껴 울었다. 팔로마가 나를 배신했던 것이다.

 내가 이제 그에게서 이 미터 정도 떨어져 있을 때, 감자기, 마치 수천의 악마가 그를 쫓아오기라도 하듯이 그는 전력질주를 했다.

 너를 배신한다는 감정을 느낀다. 죽는다는 건 너를 정말로 죽이는 것만 같다. 이젠 우리에 의해서만 족손했었던 자들을 죽여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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